“검사에게 약속했으니 날짜 안에 꼭 해달라”
형사재판을 앞둔 가족에게 피해회복은 피할 수 없는 고민이다. 피해자와 합의를 진행할 수 있을지, 합의가 어렵다면 공탁을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얼마를 마련해야 하는지를 두고 수용자와 바깥 가족의 생각이 엇갈리기도 한다.
최근 안기모카페에는 첫 공판을 앞둔 배우자가 정해진 날짜 전까지 피해금 전액을 공탁해 달라고 요구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가족의 사연이 전해졌다.
담당 변호인은 피해자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면 먼저 합의를 시도하고, 연락처를 알 수 없거나 합의가 어려울 때 공탁을 검토하자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구치소 안에 있는 배우자는 검사에게 공탁하겠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어떻게든 날짜 안에 처리해 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가족은 공탁서 작성법도 알지 못한 채 직장을 비우고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고는 자신이 쳤는데 준비와 책임은 모두 가족에게 넘어오는 것 같다”는 답답함에는 수용자 가족이 감당하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겼다.
합의와 공탁은 같은 절차가 아니다
합의는 피해자에게 피해금을 지급하고 처벌에 관한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반면 형사공탁은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기 어렵거나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 피해회복을 위해 법원 공탁소에 금전을 맡기는 제도다. 현행 공탁법은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피고인이 해당 형사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 소재지의 공탁소에 형사공탁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 정보 확인과 합의 가능성을 먼저 살펴보자는 변호인의 설명과 공탁을 준비하자는 피고인의 요구가 반드시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합의를 시도해야만 공탁 신청 자체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공탁 절차가 가능한지와 공탁이 양형에서 어느 정도 평가되는지는 구분해야 한다. 양형위원회는 공탁금을 맡겼다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감형되는 것은 아니며, 피해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과 피해자의 의견, 피해 규모와 공탁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설명한다.
‘첫 공판 전’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법정기한은 아냐
피고인이 검사에게 특정 날짜까지 공탁하겠다고 말했다고 해서 그 날짜가 모든 사건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법정 공탁기한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공탁 시기는 공판 진행 단계와 합의 가능성, 변론종결 및 선고 일정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회복을 위한 금전을 공탁한 경우 원칙적으로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피해자 측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지나치게 늦게 공탁하면 의견 청취와 자료 제출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실제 마감 시점은 담당 변호인과 재판 일정을 확인해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탁을 하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다는 단정도 경계해야 한다. 사기범죄 양형에서는 피해금액과 피해회복 정도뿐 아니라 범행 경위, 처벌 전력, 반성 여부와 재범 가능성 등 여러 요소가 함께 검토된다. 공탁에 대한 피해자의 부정적인 의견이 있거나 실제 피해회복으로 보기 어렵다면 공탁의 양형상 의미가 제한될 수도 있다.
가족 돈을 맡기는 일, 서둘러 결정해서는 안 돼
공탁금을 마련하는 가족에게는 금액뿐 아니라 실제 자금 출처와 향후 생계까지 중요한 문제다. 특히 현행 공탁법상 형사사건 피해자를 위한 변제공탁금은 착오공탁이나 피해자의 회수 동의 등 제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공탁자가 임의로 회수하기 어렵다.
가족은 먼저 변호인에게 피해자 정보 열람 결과와 합의 시도 계획, 가능한 공탁 방식, 필요한 서류, 실제 제출 예정일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가족이 직접 공탁소를 방문해야 하는지, 전자공탁이나 변호인 대리가 가능한지도 사건을 맡은 변호인과 관할 공탁소에 문의해야 한다.
피고인이 조급한 마음에 반복해서 요구하더라도 가족이 독단적으로 변호인의 계획을 바꾸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을 마련할 필요는 없다. 공탁금액과 시기, 합의 진행 상황을 문서로 정리한 뒤 피고인과 변호인이 같은 내용을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다.
안기모카페에는 재판과 합의, 공탁을 처음 겪는 수형자 가족들이 절차를 묻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안기모는 ‘안쪽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처럼 교정시설 안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과 바깥에서 비용과 절차를 책임지는 가족의 서로 다른 현실이 만나는 공간이다.
공탁은 피해회복 의지를 보여주는 방법 가운데 하나지만, 가족의 희생만으로 결과가 보장되는 수단은 아니다. 수용자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독촉이 아니라 현재 가능한 범위와 절차를 함께 확인하고 책임을 나누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