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영장 원칙의 예외인 긴급체포
헌법과 형사소송법상 피의자를 체포하려면 법관이 발부한 체포영장을 제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긴급체포는 이러한 영장주의의 예외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법률이 정한 범죄의 중대성과 혐의, 도주·증거인멸 우려, 긴급성이 모두 인정될 때에만 영장 없이 피의자를 체포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피의자가 사형·무기 또는 법정형의 장기가 3년 이상인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에 증거를 없앨 염려가 있거나 도망했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어야 하며,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도 없어야 한다.
수사기관이 조사를 빨리 진행하고 싶다는 사정만으로는 긴급체포할 수 없다. 법정요건 가운데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체포의 적법성이 문제될 수 있다.
첫 번째 요건은 법정형의 중대성
긴급체포 대상이 되려면 적용되는 범죄의 법정형이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해야 한다.
여기서 ‘장기 3년 이상’은 실제 재판에서 징역 3년 이상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해당 범죄 조항에 규정된 징역이나 금고의 상한이 3년 이상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법정형 기준을 충족한다고 긴급체포가 자동으로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피의자가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와 도주·증거인멸 우려, 영장을 받을 수 없는 긴급성이 별도로 확인돼야 한다.
범죄 혐의를 뒷받침할 상당한 이유가 필요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범인이라고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자료를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피해자와 목격자 진술, 폐쇄회로 영상과 차량 블랙박스, 통화·메신저 기록, 계좌거래와 위치정보, 현장에서 발견된 물건 등이 혐의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익명의 제보나 확인되지 않은 주장만으로 긴급체포의 상당성이 언제나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체포 당시까지 확보된 증거를 종합해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도 긴급체포 요건은 체포 이후 새로 밝혀진 사정이 아니라 체포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수사기관의 판단이 당시 상황과 경험칙에 비춰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었다면 긴급체포가 위법해질 수 있다.
도주 또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어야
형사소송법이 정한 긴급체포 사유는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경우와 도망했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는 경우다.
출석 요구를 반복적으로 피하거나 소재를 숨긴 정황, 해외 출국을 준비한 사정, 공범에게 연락해 자료 삭제를 지시한 사실, 휴대전화나 문서를 폐기하려 한 행동 등은 관련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일정한 주거와 직업이 있고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계속 응했다는 사정은 도주 우려를 낮추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다만 주거와 직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언제나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도 사건의 긴급성과 구속 필요성을 판단하는 데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 위해 우려만으로 긴급체포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법률이 정한 도주·증거인멸 우려 등의 요건이 함께 충족돼야 한다.
영장을 받을 시간조차 없는 긴급성
긴급체포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지다.
형사소송법은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처럼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발부받을 시간이 없는 상황을 긴급성의 예로 들고 있다.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주소와 소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상당 기간 체포를 준비할 수 있었는데도 영장을 받지 않은 채 편의를 위해 긴급체포했다면 적법성이 문제될 수 있다.
다만 긴급성은 사후 결과만으로 단순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체포 당시까지 수집된 자료와 현장 상황을 종합해 사회통념상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긴급체포하면 검사 승인 필요
긴급체포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이 할 수 있다. 경찰이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경우에는 즉시 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즉시 긴급체포서를 작성해야 한다. 긴급체포서에는 범죄사실의 요지와 긴급체포 사유 등 법률상 필요한 내용을 기재한다.
긴급체포서를 체포 후 작성한다고 해서 체포 당시 요건이 부족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범죄 혐의와 도주·증거인멸 우려, 긴급성은 실제 체포가 이뤄지는 시점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
체포할 때 고지받아야 하는 권리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체포할 때 피의사실의 요지와 체포 이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변명할 기회를 줘야 한다.
피의자신문을 시작하기 전에는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 진술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고지해야 한다.
긴급체포된 피의자는 변호인을 선임하고 접견할 수 있으며, 체포의 적법성과 계속 구금할 필요가 있는지를 법원에 심사해 달라는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피의자의 변호인이나 법률이 정한 가족 등도 체포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다.
체포 직후에는 감정적으로 장시간 진술하기보다 정확한 혐의와 체포 이유를 확인하고 변호인과 상의해 진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48시간은 구속영장 청구의 최장 시한
긴급체포한 피의자를 계속 구금하려면 검사는 지체 없이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
경찰이 긴급체포한 사건은 사법경찰관이 검사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검사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한다. 이때 구속영장은 피의자를 실제로 체포한 때부터 48시간 이내에 청구해야 한다.
48시간은 수사기관이 무조건 피의자를 붙잡아 둘 수 있도록 보장된 시간이 아니다. 구속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거나 영장을 청구하지 않기로 했다면 48시간이 끝나기 전이라도 석방해야 한다.
48시간 안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거나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지 않으면 피의자를 즉시 석방해야 한다.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 필요성 판단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법원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 이른바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다.
체포된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받은 판사는 지체 없이 피의자를 심문해야 하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영장이 청구된 날의 다음 날까지 심문한다.
법원은 범죄 혐의가 어느 정도 소명됐는지와 주거, 직업, 가족관계, 출석 태도, 도주·증거인멸 우려, 수사가 진행된 정도 등을 종합해 구속 필요성을 판단한다.
변호인은 일정한 주거와 직업이 있다는 점,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성실히 응한 사실, 핵심 증거가 이미 확보돼 인멸 가능성이 낮다는 점 등을 자료로 제출할 수 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피의자는 석방되지만 사건이 무혐의로 끝난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가 계속될 수 있으며, 검사는 수사 결과에 따라 기소 또는 불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석방 후 동일 사건으로 다시 긴급체포할 수 있나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거나 영장을 발부받지 못해 석방된 사람은 동일한 범죄사실로 영장 없이 다시 체포할 수 없다.
같은 혐의로 신병을 다시 확보하려면 원칙적으로 법관이 발부한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이 필요하다. 이는 긴급체포와 석방을 반복하면서 48시간 제한과 영장주의를 우회하는 일을 막기 위한 장치다.
다만 기존 사건과 별개의 범죄사실이 새롭게 확인됐거나 법원이 적법하게 영장을 발부한 경우는 구분해야 한다.
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석방하면 법원에 통지
검사가 긴급체포한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고 석방한 경우에는 석방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관련 내용을 법원에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
통지서에는 긴급체포된 사람의 인적사항, 체포 일시와 장소, 구체적인 체포 이유, 석방 일시·장소와 사유 등이 포함되며 긴급체포서 사본도 첨부된다.
긴급체포 후 석방된 사람과 변호인, 법률이 정한 가족 등은 통지서와 관련 서류를 열람하거나 복사할 수 있다. 경찰이 영장을 신청하지 않고 피의자를 석방한 경우에는 즉시 검사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러한 사후 통지는 영장 없는 체포가 남용되지 않도록 법원이 긴급체포와 석방 경위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통제장치다.
긴급체포 직후 가족이 확인할 사항
가족이 체포 사실을 알게 됐다면 정확한 수사기관과 담당부서, 피의자 이름과 사건번호, 체포 시각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특히 48시간은 실제 체포 시각부터 계산되므로 경찰서에 도착한 시간이나 조사를 시작한 시간이 아니라 언제 신체의 자유가 제한됐는지가 중요하다.
피의자가 복용 중인 약이나 응급치료가 필요한 질환이 있다면 처방전과 투약정보를 담당 수사관에게 신속하게 전달해야 한다.
합의와 피해회복이 필요한 사건이라도 가족이 피해자나 공범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진술 변경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행동은 증거인멸이나 위해 우려를 높이는 사정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적법한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