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체포된 뒤에야 연락을 받아 변호사를 늦게 선임했습니다”
온라인 교정정보 커뮤니티에는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가족이 긴급체포된 뒤 구속돼 1심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가족의 설명에 따르면 피고인은 고수익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하고 대면으로 돈을 전달하는 업무를 했지만 자신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행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초기 조사였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지 몰랐다고 진술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답변이 달라졌고, 이후 변호인을 선임한 뒤에는 사기 범행에 대한 고의를 부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에게는 불안한 질문이 남는다.
“처음 조사에서 진술을 잘못했다면 이미 늦은 것일까.”
“한 번 인정하는 취지로 말했다가 다시 부인하면 법원은 믿지 않는 것일까.”
“보이스피싱인지 몰랐다는 주장을 1심에서 계속할 수 있을까.”
긴급체포됐다고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냐
먼저 긴급체포와 유무죄 판단을 구분해야 한다.
긴급체포는 일정한 중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는 등 법률이 정한 요건 아래 영장 없이 신병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수사단계의 절차다.
긴급체포 이후 계속 피의자를 구금하려면 별도의 구속영장 절차가 진행돼야 한다.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수용됐다는 것 역시 유죄판결이 내려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 것과 유죄가 확정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몰랐다’는 말만 하면 무죄일까?
그렇지는 않다.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나 전달책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정상적인 업무인 줄 알았다”며 사기죄의 고의를 다투는 경우가 있다.
이때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가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에 가담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했는지다.
반드시 보이스피싱 조직의 전체 구조와 범행 전모를 모두 알고 있어야만 고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가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이를 용인하고 행동했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법원은 피고인이 단순히 “몰랐다”고 말하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현금수거책의 ‘고의’를 어떻게 판단할까?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 사건에서 사기 범행의 공모와 고의를 판단할 때 여러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일자리를 제안받았는지, 정상적인 근로계약이나 업무위탁 절차가 있었는지, 업무 자체가 통상적인 형태였는지 등이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피해자를 만나 어떤 행동을 했는지, 현금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거나 송금했는지, 타인의 개인정보나 계좌를 사용했는지, 현금수거 횟수와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보수의 액수와 지급방식, 피고인의 나이와 사회경험 등도 함께 고려될 수 있다.
즉 “고수익 알바인 줄 알았다”는 설명 하나만으로 유무죄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회사 같지는 않았다”는 표현 하나만 떼어내 곧바로 보이스피싱 사기의 고의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정상적인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진술은 위험할까?
사건에서 상당히 주의해서 분석해야 할 부분이다.
‘정상적인 회사는 아닌 것 같았다’는 인식과 ‘보이스피싱으로 피해자를 속여 돈을 받아내는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것은 법적으로 동일한 문장이 아니다.
다만 이런 진술은 다른 객관적인 정황과 결합돼 피고인의 인식을 판단하는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채용 과정이 지나치게 비정상적이었고, 거액의 현금을 낯선 사람에게 받아 다른 곳으로 전달했으며, 신원을 숨기라는 지시까지 받았는데도 계속 일을 했다면 법원은 그러한 사정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반대로 피고인이 정상적인 채권회수나 전달업무라고 믿을 만한 구체적인 자료가 존재한다면 그 자료 역시 중요하다.
결국 문장 하나가 아니라 사건 전체가 중요하다.
조사 중 말을 바꿨다면 무조건 불리할까?
진술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재판에서 신빙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는 왜 처음과 지금의 설명이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술을 번복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왜 진술이 달라졌는지와 어느 진술이 객관적인 자료에 부합하는지다.
초기 조사 당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실제 조서에는 어떻게 기재돼 있는지, 피고인이 조서를 확인하고 서명했는지, 영상녹화가 존재하는지 등을 변호인이 사건기록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인정하면 빨리 끝난다”는 말을 듣고 답했다고 주장한다면?
이 부분도 단순히 가족의 설명만으로 결론 내릴 수 없다.
형사소송법은 피의자신문 전에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과 진술거부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점 등을 알려주도록 하고 있다.
피의자에게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있다.
만약 조사 과정의 위법성이나 진술의 임의성이 실제 재판에서 문제가 된다면 구체적인 조사 상황과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강압적으로 느꼈다”는 주장만으로 기존 진술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실제로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진술이라면 형사소송법상 별도의 증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기억에 의존해 주장하기보다 변호인이 조서와 수사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수사기관에서 작성된 피의자신문조서는 무조건 증거가 될까?
현재 형사소송법에서는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라고 해서 재판에서 아무 조건 없이 피고인의 유죄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이 된 피의자의 진술을 기재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는 법률상 요건이 있다.
따라서 초기 조사에서 불리한 진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 “이제 재판은 끝났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조서의 증거능력 문제와 별개로 사건에는 계좌내역, 메신저 대화, 통화내역, 이동경로, 현금 전달자료, 다른 피고인이나 관계인의 진술 등 여러 증거가 존재할 수 있다.
결국 변호인은 조서 하나가 아니라 전체 증거를 확인해야 한다.
보이스피싱 ‘무죄 주장’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자료
피고인이 보이스피싱인지 몰랐다고 주장한다면 말만 반복하는 것보다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디에서 구인광고를 봤는지부터 확인할 수 있다.
채용 당시 어떤 설명을 들었는지, 근로계약서는 있었는지, 회사명과 사업자정보를 확인했는지, 누구와 연락했는지, 업무지시는 어떤 메신저로 받았는지도 중요할 수 있다.
돈을 받을 때 상대방에게 무엇이라고 설명했는지, 받은 돈을 어디로 전달했는지, 보수는 얼마였는지와 어떤 방식으로 지급받았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또 어느 시점에 ‘이상하다’고 느꼈는지와 그 이후에도 일을 계속했는지도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자료들이 모여 피고인이 당시 범죄 가능성을 인식했는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된다.
휴대전화와 메신저 기록이 중요한 이유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자료가 중요할 수 있다.
구인광고부터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사람과 나눈 대화, 업무지시, 송금·전달 방법, 보수에 관한 대화 등이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에게 유리한 대화만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범죄를 의심할 만한 지시가 있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가족이 일부 메시지만 보고 유리·불리를 단정하기보다 변호인이 전체 대화의 맥락과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이 말하는 ‘부적격심사’는 무엇부터 확인해야 할까?
인터넷에서 형사절차 정보를 찾다 보면 정확하지 않은 용어가 섞여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이 사연에서 언급된 ‘부적격심사’ 역시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형사재판에서 보이스피싱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모든 피고인이 의무적으로 신청해야 하는 ‘부적격심사’라는 일반적인 절차가 따로 존재한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구속의 적법성과 필요성을 다시 판단받는 ‘구속적부심사’와 혼동했을 가능성도 있다.
구속적부심은 구속된 피의자가 법원에 구속의 적법성과 계속 구속할 필요성을 다시 심사해 달라고 청구하는 절차다.
하지만 이미 기소돼 피고인이 된 이후라면 구속적부심과는 절차가 달라지고, 석방을 원한다면 보석 등 다른 제도를 검토하게 된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본 특정 절차를 “무죄 주장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무죄 주장에 불리할까?
구속 여부를 다투는 것과 본안에서 사기죄의 고의를 다투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구속적부심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보이스피싱 사기 혐의를 인정한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고 해서 무죄 주장이 더 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구속절차에서는 피의자를 계속 구속할 필요성이 있는지를 판단하고, 본안 재판에서는 검사가 공소사실을 증명했는지를 판단한다.
두 절차의 목적이 다르다.
따라서 “무죄 스탠스를 유지하려면 구속적부심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식의 인터넷 정보는 그대로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이미 기소돼 구치소에서 1심을 기다리고 있다면?
현재 사건이 이미 기소돼 피고인 신분으로 1심 재판을 기다리는 단계라면 초점을 본안 재판 준비에 맞출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변호인에게 공소장을 확인하고 정확히 어떤 범죄사실로 기소됐는지 설명을 듣는 것이 좋다.
그 다음 검사가 사기죄의 고의를 증명하기 위해 어떤 증거를 제출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피고인이 어떤 부분은 인정하고 어떤 부분은 부인하는지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돈을 전달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사실은 몰랐다”는 입장이라면 행위 자체와 범죄에 대한 인식을 구분해서 변론해야 한다.
변호사가 알아서 다 해주는 걸까?
변호인을 선임했다고 가족이 모든 형사절차를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 쟁점 정도는 변호인에게 설명을 듣는 것이 좋다.
가족이 변호인에게 확인할 질문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현재 정확한 공소사실은 무엇인지, 피고인이 인정하는 부분과 부인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초기 진술 가운데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검사가 고의를 입증하기 위해 제출한 핵심 증거가 무엇인지 등을 물어볼 수 있다.
또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제출할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지, 가족이 찾아야 할 자료가 무엇인지, 첫 공판에서는 어떤 입장을 밝힐 예정인지도 확인해볼 수 있다.
변호사가 보이스피싱 ‘전문’이라는 광고문구를 사용하는지보다 실제 사건기록을 충분히 검토하고 핵심 쟁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가족이 지금 할 수 있는 일
갑작스러운 긴급체포와 구속을 겪으면 가족은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본 신청서를 무작정 제출하거나 피고인의 진술을 가족이 대신 만들어주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오히려 당시 상황을 확인할 객관적인 자료를 보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구인광고, 문자메시지, 메신저 대화, 통화기록, 입금내역, 업무지시 자료, 회사라고 알고 있던 곳의 정보 등이 남아 있다면 임의로 삭제하거나 수정하지 말고 변호인에게 존재 여부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
가족이 기억하는 사건 경위도 날짜와 순서대로 정리해 변호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이미 진술을 잘못했다고 생각해도 재판이 끝난 것은 아냐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초기 진술은 중요하다.
특히 처음에는 “몰랐다”고 했다가 이후 다른 취지의 답변을 했다면 검사는 진술의 변화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유무죄가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의 고의를 판단할 때도 채용경위와 업무방식, 현금수거 과정, 전달방법, 보수, 피고인의 사회경험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결국 1심에서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피고인이 실제로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이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적어도 그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일을 계속했다고 볼 수 있는가.”
검사는 이를 증명해야 하고 피고인과 변호인은 검사가 제시하는 증거와 논리를 검토해 반박하게 된다.
긴급체포 당시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불안한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새로운 절차를 계속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선임된 변호인과 함께 수사기록과 객관적인 증거를 확인하고 피고인의 입장을 일관되게 정리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