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단순히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서류 한 장을 받는 절차로 끝나지 않는다. 특히 피해자가 피고인의 출소 이후 재접촉이나 보복 가능성까지 걱정하는 사건이라면, 합의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불안을 충분히 듣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설명하는 일이 중요하다. 최근 한 보복협박 사건의 합의 과정은 이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강남 소재 편의점에서 발생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보복협박등) 사건의 피고인은 경찰 단계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 수개월째 구금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피고인에게 동종·유사 전력이 있었던 만큼 가족들은 상당한 형량이 선고될 가능성을 우려했고, 사건을 맡은 변호인 측 역시 피해회복을 중요한 양형 준비 사항 가운데 하나로 판단했다.
하지만 피해자와의 합의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5월 피해자를 직접 찾아가 처음 만났을 당시에는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이후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다시 방문했을 때는 피해자의 딸로부터 더 이상 찾아오지 말라는 의사까지 전달됐다. 이후 선고기일이 다가오면서 가족들은 1심 선고를 받은 뒤 항소심에서 다시 피해회복을 시도하는 방안까지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가족의 요청이 계속되면서 선고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 다시 합의 가능성이 열렸다.
피해자 측과 연락이 닿아 직접 대화할 기회가 마련됐지만, 피해자가 가장 우려한 것은 합의금의 액수만이 아니었다. 피해자는 피고인이 출소한 뒤 다시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혹시라도 보복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반복해서 물었다. 자료에서도 변호인 측은 이 부분을 합의 성사의 핵심 쟁점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당사자들은 저녁 시간부터 약 3시간 동안 대화를 이어갔다. 피해자 가족과 피고인 측은 합의 조건과 향후 재접촉 우려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고, 최종적으로 200만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의가 성립됐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합의서만 작성된 것은 아니었다. 피해자 측으로부터 합의서와 고소취하서, 처벌불원 취지의 탄원서, 합의금 수령 영수증, 법원 제출을 위한 위임장까지 작성·날인받았다. 실제 자료에도 관련 서류를 준비하고 작성한 모습이 확인된다.
선고가 임박했던 만큼 서류 제출 역시 촉박하게 진행됐다.
합의가 끝난 뒤 관련 서류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당직실을 통해 야간 접수됐고, 다음 날 법원 사건조회에서도 서류가 제출된 사실이 확인됐다. 변호인 측은 해당 자료가 선고 전에 재판부에 전달될 수 있도록 후속 확인까지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을 수임해 진행한 법무법인 시그니처 오창훈 변호사는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단순히 합의금 액수를 정하는 과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보복협박처럼 피해자가 향후 재접촉이나 보복 가능성을 두려워하는 사건에서는 그 불안이 무엇인지 먼저 듣고, 다시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설명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오 변호사는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나 피해회복은 양형에서 고려될 수 있는 중요한 사정이지만, 합의가 됐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형량이나 집행유예가 당연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며 “범행의 내용, 전과, 재범 가능성, 범행 이후의 태도, 피해회복 노력 등을 전체적으로 준비해 재판부에 전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이번 사건처럼 선고 직전에 합의가 이뤄지는 경우에는 합의 자체만큼이나 관련 서류를 빠짐없이 갖춰 재판부가 실제 선고 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제출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합의서뿐 아니라 처벌불원 의사와 합의금 지급 사실 등 피해회복의 구체적인 내용이 객관적인 자료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피해자가 접촉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경우에는 합의를 이유로 반복적으로 찾아가거나 연락하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피해자의 의사와 안전을 우선하면서 변호인을 통한 연락이나 적절한 절차를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나 처벌불원 의사는 양형 판단에서 고려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선처 결과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범행의 중대성, 피고인의 전력, 피해 정도, 피해회복 여부, 반성 정도와 재범 위험성 등을 함께 살핀다.
그럼에도 구속된 가족의 재판을 지켜보는 수형자 가족들에게 “피해자와 언제까지 합의를 시도해야 하는지”, “합의가 되면 어떤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지”는 현실적으로 매우 큰 고민이다.
이런 재판과 양형, 피해회복 과정의 경험은 안기모카페에서도 꾸준히 공유되고 있다. 안기모카페는 수형자의 가족과 지인들이 교도소·구치소 생활뿐 아니라 재판, 양형, 합의, 가석방과 출소 과정에서 겪는 현실적인 문제를 나누는 교정생활 정보공유 커뮤니티다. 특히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지면서 처음 형사절차를 겪는 가족들에게 정보 교환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 사례는 형사사건에서 ‘합의’라는 결과만큼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피고인 가족의 절박함만으로는 합의가 완성될 수 없다. 피해자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듣고, 피해회복과 재발 방지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까지 고민할 때 비로소 합의는 단순한 양형자료를 넘어 피해자의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에 가까워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