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트해서 보냈는데 안쪽이가 다시 다 써야 하나요?”
최근 교정생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용 중인 가족에게 준법서약서와 재범방지서약서를 출력해 보내줬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가족은 출력된 문서를 수용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필로 옮겨 적어야 하는지, 아니면 내용을 확인한 뒤 마지막에 서명만 해도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반성문이나 탄원서를 준비했던 가족이라면 이런 고민이 생기기 쉽다.
반성문은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준법서약서나 재범방지서약서 역시 반드시 모든 문장을 자필로 적어야 법원에서 인정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서마다 성격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준법서약서’가 모든 형사재판의 필수 양식은 아냐
먼저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서 모든 피고인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준법서약서’ 또는 ‘재범방지서약서’라는 통일된 법정 양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인터넷이나 양형자료 관련 사이트에서 접하는 서류 가운데 상당수는 피고인이 앞으로 법을 지키고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정리하기 위해 활용하는 양형자료 형태다.
따라서 특정 민간 사이트의 서식에 적힌 문장을 그대로 작성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특별한 효력이 자동으로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그 양식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양형상 불이익을 받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법은 ‘준법서약서 제출 여부’를 양형조건으로 따로 정하지 않아
형법 제51조는 법원이 형을 정할 때 범인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준법서약서를 제출하면 감형한다”거나 “재범방지서약서를 반드시 자필로 작성해야 한다”는 항목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즉 이런 문서는 피고인의 범행 후 태도나 재범방지 노력 등을 설명하기 위해 제출할 수 있는 자료 가운데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출력한 서류에 사인만 해도 될까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해당 재판부나 변호인, 제출을 요구한 기관이 “본인이 전부 자필로 작성해야 한다”고 별도로 요구한 경우라면 그 지시에 따라야 한다.
또 사용하는 서식 자체에 ‘자필 작성’이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다면 그 조건을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하지만 그런 별도 요구가 없는 일반적인 민간 양식이라면 모든 문장을 반드시 손으로 다시 옮겨 적어야만 유효하다는 일률적인 법 규정은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출력된 내용을 본인이 충분히 확인한 뒤 날짜와 성명, 서명을 자필로 기재해 제출하는 방식 자체를 무조건 잘못된 작성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제출할 수 있느냐’와 ‘양형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는 다른 문제
법원에 문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문서가 판사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준법서약서에 누구나 쓸 수 있는 문구가 인쇄돼 있고 피고인이 마지막에 이름만 적었다면 문서 자체는 존재한다.
하지만 재판부 입장에서는 피고인이 실제로 어떤 부분을 반성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바꾸려 하는지를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양형위원회의 공식 설명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양형위원회는 ‘진지한 반성’을 판단할 때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인 경위뿐만 아니라 피해회복 또는 재범방지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이 있었는지까지 조사해 판단한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감경인자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재범방지서약서 역시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만으로 끝내기 어려워
예를 들어 재범방지서약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만 있다면 매우 추상적이다.
“앞으로 법을 잘 지키겠습니다.”
“다시는 같은 잘못을 하지 않겠습니다.”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물론 이런 다짐도 의미는 있다.
하지만 실제 양형자료로 활용하려면 왜 범죄가 발생했는지, 어떤 원인을 제거할 것인지, 출소하거나 재판이 끝난 뒤 어떤 생활을 할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들어가는 편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범죄 유형에 맞는 재범방지 계획이 중요해
재범방지 내용은 사건마다 달라져야 한다.
음주운전 사건이라면 술을 마신 날 차량을 운전하지 않기 위한 구체적인 이동방법, 차량 처분 여부, 음주습관 개선 계획, 관련 교육이나 상담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도박 범죄라면 도박사이트 접근 차단, 계좌나 자금관리 방식 변경, 도박중독 상담·치료 등의 계획이 더 직접적일 수 있다.
마약 사건이라면 치료·재활 프로그램이나 기존 교류관계 단절, 정기적인 상담 계획 등이 문제될 수 있다.
경제범죄라면 피해회복 계획, 채무 정리, 직업 및 수입관리, 금전거래 방식 개선 등이 더 중요한 내용이 될 수 있다.
즉 같은 ‘재범방지서약서’라는 제목을 사용하더라도 사건과 관계없는 문구를 복사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범죄 원인에 맞춰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필 한 장이 인쇄물 열 장보다 무조건 좋은 것도 아냐
가족들은 종종 “판사는 자필을 더 좋게 본다”거나 “컴퓨터로 작성하면 진정성이 없다고 본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를 일률적인 공식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양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글씨를 손으로 썼는지가 아니라 내용과 실제 행동이다.
피고인이 아무 생각 없이 인터넷 문구를 열 장 자필로 베껴 쓴 것과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정리해 구체적인 계획을 담은 한 장짜리 문서를 비교한다면 단순히 분량이나 자필 여부만으로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본인이 직접 작성한 부분을 추가하는 방법은 생각해볼 수 있어
가족이 이미 서식을 출력해 수용자에게 보내준 상황이라면 반드시 전부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출력된 기본 서식을 사용하더라도 피고인이 직접 작성할 수 있는 항목을 추가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범행의 원인’,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달은 점’, ‘구체적인 재범방지 방법’, ‘출소 후 생활계획’ 등을 본인이 직접 적도록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작성일과 이름, 서명을 자필로 기재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단순한 정형문구만 있는 서약서보다 피고인 개인의 상황이 더 드러난다.
반성문과 준법서약서도 역할이 조금 달라
반성문은 자신의 범행과 피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무엇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설명하는 성격이 강하다.
재범방지서약서는 앞으로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에 초점을 둘 수 있다.
준법서약서는 앞으로 법질서를 지키고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표현하는 성격으로 작성할 수 있다.
따라서 세 문서를 모두 제출한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복사할 필요는 없다.
각 문서의 목적에 맞게 내용을 나누는 편이 자연스럽다.
서약서를 많이 내면 양형에 더 유리할까
그렇다고 문서 종류를 계속 늘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반성문, 준법서약서, 재범방지서약서, 생활계획서, 가족서약서 등 제목만 다른 문서를 여러 장 만들어도 내용이 모두 비슷하다면 실제 전달되는 정보는 많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사건에 필요한 내용을 몇 개의 자료로 정리하고, 객관적인 행동자료를 함께 내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담을 실제로 받았다면 상담확인서, 교육을 이수했다면 교육자료나 수료증, 취업이 예정돼 있다면 고용 관련 자료 등 실제 재범방지 계획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있을 수 있다.
양형위원회도 ‘자발적인 노력’을 본다고 설명해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진지한 반성의 의미를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인 경위와 피해 회복 또는 재범 방지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 등을 조사한 결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재범방지서약서에 “재범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적는 것 자체보다 실제로 재범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혐의를 다투는 사건이라면 문구를 더 조심해야
모든 사건에서 무조건 “제가 모든 범행을 인정하고 깊이 반성합니다”라고 작성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피고인이 범행 일부를 부인하거나 공범 사이의 역할, 범죄금액, 고의 여부 등을 다투고 있다면 서약서나 반성문의 표현이 현재 재판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고인은 자신이 단순 가담자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재범방지서약서에서는 스스로 전체 범행을 주도한 것처럼 작성한다면 방어논리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사건에서는 변호인과 문구를 확인한 뒤 제출하는 것이 안전하다.
수용 중이라면 가족이 대신 내용을 만들어주는 것도 신중해야
가족 입장에서는 시간이 부족하고 수용자가 자료를 준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모든 문장을 대신 작성해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피고인의 반성과 재범방지를 보여주기 위한 자료라면 가족이 만든 완성본에 단순히 서명만 하는 방식은 자료의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
가족은 형식이나 참고자료를 보내줄 수 있지만 핵심 내용은 가능하면 수용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춰 생각하고 작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특히 본인이 경험하지 않은 상담이나 교육, 피해회복 노력 등을 실제로 한 것처럼 기재해서는 안 된다.
민간 양식이라면 ‘공식 양식’처럼 생각하지 않아도 돼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양식의 제목이 ‘준법서약서’, ‘재범방지서약서’라고 되어 있다고 해서 법원이나 검찰이 공식적으로 정한 서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누가 만든 서식인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법원이나 검찰, 교정기관이 특정 절차를 위해 제공한 공식 서식이라면 해당 기관의 작성방법을 따라야 한다.
반면 양형자료 업체나 개인이 만든 참고용 양식이라면 작성방법 역시 그 양식이 권장하는 방식일 뿐 법률상 의무와는 구별해야 한다.
결론은 ‘자필 여부’보다 서류의 출처와 목적을 먼저 확인해야
안기모카페에서는 수용 중인 가족에게 양형자료를 보내주면서 “이걸 전부 다시 손으로 써야 하나요”, “출력해서 사인만 받아도 되나요”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답을 하나로 정하기는 어렵다.
먼저 해당 서류가 법원·검찰·교정기관이 특정 절차에서 요구한 공식 문서인지, 아니면 가족이 인터넷에서 찾은 양형자료용 참고서식인지 확인해야 한다.
공식 문서이고 자필 작성 지시가 있다면 그대로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양형자료용 준법서약서나 재범방지서약서라면 모든 내용을 반드시 손으로 베껴 써야만 효력이 있다는 일률적인 법 규정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단순히 출력된 정형문구에 서명만 하는 것보다는 피고인이 자신의 사건을 돌아보고 구체적인 재범방지 계획을 직접 작성해 포함시키는 편이 서약서의 목적에 더 부합한다.
법원이 확인하려는 것은 글씨체가 아니라 피고인이 실제로 무엇을 반성하고 있고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변화를 시작했는지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