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을 처음 경험하는 가족에게 ‘탄원서를 준비해 달라’는 말은 생각보다 어렵게 다가온다.
안기모카페에도 수용 중인 가족을 위해 탄원서를 작성하려는데 판사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작성하면 되는지, 신분증 사본과 함께 변호사에게 전달하는 것이 좋은지 궁금해하는 사연이 전해졌다.
탄원서는 가족이 피고인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양형자료 가운데 하나다. 다만 많이 제출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작성 목적과 제출 방법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탄원서는 누구에게 쓰는 서류일까?
재판 중 제출하는 탄원서는 해당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참고할 수 있도록 제출하는 자료다.
작성할 때 반드시 편지처럼 ‘존경하는 판사님께’라는 표현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탄원서’라는 제목 아래 사건번호와 피고인 이름, 탄원인의 인적사항과 관계 등을 기재하고 탄원 내용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준비할 수 있다.
본문에서는 피고인과 어떤 관계인지, 평소 어떤 모습을 직접 지켜봤는지, 사건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등을 설명하고 선처를 요청하는 취지를 담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특정한 호칭보다 어느 사건에 관한 탄원서인지 재판부가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작성하는 것이다.
가족이 쓴다면 무엇을 담는 게 좋을까?
가족 탄원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한 번만 선처해 주십시오” 같은 표현이다.
물론 선처를 요청하는 취지는 필요하지만 이런 문장만 반복하면 피고인의 구체적인 사정을 전달하기 어렵다.
가족이라면 피고인의 평소 생활을 어떻게 지켜봤는지, 사건 이후 어떤 변화를 확인했는지, 가족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등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출소 또는 석방 이후 함께 거주할 계획이 있다면 생활환경을 설명하고, 취업이나 생계 지원이 예정돼 있다면 그 내용을 적을 수도 있다.
재범 방지를 위해 가족이 실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막연한 약속보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신분증 사본은 반드시 붙여야 할까?
탄원서를 준비하면서 가족들이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다.
탄원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취지로 신분증 사본을 함께 준비하는 사례가 있지만, 모든 탄원서에 신분증 사본을 반드시 첨부해야만 접수되는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특히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다.
담당 변호인이 있다면 탄원서와 함께 어떤 확인자료가 필요한지 먼저 문의한 뒤 준비하는 방법이 안전하다.
변호사에게 전달하면 법원에 제출해줄까?
변호인이 선임돼 있다면 가족이 작성한 탄원서를 변호인에게 전달하고 다른 양형자료와 함께 정리해 제출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이 방법의 장점은 현재까지 어떤 자료가 제출됐는지 변호인이 파악하면서 중복되는 내용이나 제출 시점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이 각각 법원에 여러 차례 자료를 보내면 변호인이 전체 제출자료를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특히 반성문, 합의서, 피해회복 자료, 재범방지 계획 등 다른 양형자료도 준비하고 있다면 변호인에게 한 번에 검토받아 제출 순서를 정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탄원서는 많을수록 유리하다는 공식은 없어
가족들이 흔히 하는 또 다른 고민은 ‘몇 장이나 받아야 하는가’다.
부모와 배우자, 형제자매부터 친구와 직장동료까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탄원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탄원서의 장수가 곧바로 선처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문구를 복사해 여러 사람이 이름만 바꿔 제출하기보다는 각각의 탄원인이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작성하는 것이 탄원 취지를 전달하는 데 더 적절하다.
부모라면 가족의 보호·관리 계획을, 배우자라면 가정생활과 경제적 상황을, 직장 관계자라면 실제 근무 태도나 복귀 가능성 등을 설명하는 식으로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사건을 다투고 있다면 탄원서 내용도 주의해야
피고인이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사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혐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투고 있다면 가족이 작성한 탄원서의 표현이 현재 변호인의 변론 방향과 충돌하지 않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특정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가족이 탄원서에서 해당 범행을 전제로 사죄하는 내용을 작성한다면 변론 취지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사건에서는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에 담당 변호인에게 내용을 확인받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가족이 탄원서를 준비할 때 먼저 확인할 것
탄원서를 처음 작성한다면 화려한 표현이나 긴 분량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다.
현재 재판이 어느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사건번호와 피고인 이름이 무엇인지부터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다음 피고인과 탄원인의 관계, 직접 알고 있는 사정, 사건 이후 변화, 앞으로 가족이 도울 수 있는 부분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된다.
이미 변호인이 선임돼 있다면 작성한 탄원서를 바로 제출하기보다 변호인에게 전달해 제출 시점과 다른 양형자료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처음 쓰는 가족에게는 한 장의 탄원서도 어렵다
구치소나 교도소 안에 있는 가족을 위해 탄원서를 작성하는 사람에게 이 서류는 단순한 문서 한 장이 아니다.
어떤 말을 써야 도움이 될지, 잘못된 표현 때문에 오히려 불리해지지는 않을지 고민하면서 한 문장을 여러 번 고치는 가족들도 있다.
안기모카페에서도 반성문과 탄원서, 합의서 등 재판에 제출하는 서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묻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안기모는 교정시설 안에 있는 가족과 지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교정생활과 재판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탄원서에는 특별한 문장보다 탄원인이 실제로 알고 있는 이야기가 중요하다.
‘판사님께 어떻게 잘 써야 할까’를 고민하기보다 피고인과 어떤 관계이고, 무엇을 직접 지켜봤으며, 앞으로 가족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사실에 맞게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