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너무 많아 확인하기 어렵다며 공탁을 이야기하네요”
최근 형사재판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자 합의와 형사공탁 사이에서 고민하는 가족의 사연이 올라왔다.
여러 명의 공범이 연루된 사건으로 피해자 수도 많은 상황에서 변호인에게 피해자 합의를 요청했지만, 피해자가 많아 확인이 어렵다는 답변과 함께 공탁 이야기를 들었다는 내용이다.
가족의 고민은 컸다.
피고인의 가담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은데 자신의 범행과 관련된 피해자를 가려내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먼저인지,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면 공탁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변에서는 “요즘은 공탁해도 별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 괜히 돈만 쓰게 되는 것은 아닌지도 걱정됐다.
공탁하면 무조건 감형? 지금은 그렇게 볼 수 없어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형사공탁을 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재판부가 반드시 형을 감경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 역시 이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과거에는 양형기준의 피해회복 관련 양형인자에 ‘공탁 포함’이라는 표현이 사용됐지만, 양형위원회는 공탁만 하면 당연히 감경인자에 해당하는 것처럼 오인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해당 문구를 삭제했다.
현재는 단순히 “얼마를 공탁했다”는 사실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공탁이 실제 피해회복으로 평가될 수 있는지를 보다 신중하게 판단한다.
따라서 재판을 앞두고 일정 금액을 공탁했다고 해서 “이 정도면 형이 얼마나 줄어든다”고 계산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공탁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도 아냐
반대의 오해도 주의해야 한다.
공탁했다고 자동으로 감형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형사공탁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양형위원회는 공탁이 실질적 피해회복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 피해자 또는 법정대리인의 의견, 피고인이 공탁금을 다시 회수할 수 있는지와 실제 회수할 의사가 있는지, 피해 법익의 성질, 피해 규모와 정도 등을 신중하게 조사·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탁을 했느냐’ 하나가 아니라 그 공탁을 포함해 실제로 어느 정도의 피해회복 노력이 이루어졌는가다.
사건의 종류와 피해 규모, 피해자의 의사 등에 따라 공탁이 양형에서 평가되는 정도도 달라질 수 있다.
합의와 공탁은 같은 것으로 볼 수 없어
피해자와 직접 합의한 경우와 일방적으로 돈을 공탁한 경우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피해자와 피고인 측 사이에 피해회복에 관한 의사소통과 합의가 있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한 경우라면 사건에 따라 중요한 양형사정으로 검토될 수 있다.
반면 형사공탁은 피해자가 합의에 동의하지 않았거나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일정한 요건을 갖춰 피해회복을 위한 금전을 공탁하는 제도다.
따라서 ‘합의가 안 됐으니 공탁하면 합의한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양형위원회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한 공탁을 당연한 감경요소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피해자 연락처를 몰라도 가능한 ‘형사공탁 특례’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의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피고인이 피해자의 주소나 주민등록번호 등 상세한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현행 공탁법과 공탁규칙에 따르면 일정한 요건을 갖춘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주소나 주민등록번호를 알지 못하더라도 사건번호와 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 명칭 등을 이용해 형사공탁을 진행할 수 있다.
제도 도입 취지 자체도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무리하게 접근하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문제를 줄이면서 피고인에게 피해회복을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피해자 연락처를 모르니 공탁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피해자가 많다면 ‘누구에게 얼마를 공탁할지’가 더 어려워져
이번 사연처럼 피해자가 다수이고 공범도 여러 명이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단순히 전체 피해액을 보고 일정 금액을 공탁할지 결정하기보다 피고인이 실제로 어느 범행에 가담했는지, 가담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피고인과 관련해 인정되는 피해자는 누구인지, 피해액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공범이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피고인의 가담 정도와 양형사정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실제 양형기준에서도 범행에서 맡은 역할이나 가담 정도 등이 별도의 판단 요소가 되는 범죄유형들이 있다.
따라서 “전체 피해자가 몇 명이니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공탁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하기보다 자신의 공소사실과 피해관계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담기간이 짧은데 제 피해자를 가려내 합의해야 하지 않나요?”
사연에서 가족이 가장 답답해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공범이 많고 전체 범행기간도 길지만 피고인의 실제 가담기간은 짧다면 가족 입장에서는 “우리 사건과 관련된 피해자부터 확인해 합의를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 부분은 실제 공소장과 수사·재판기록을 확인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피고인에게 어떤 범죄사실과 피해액이 인정되고 있는지, 공동정범 등 공범관계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에 따라 책임범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피해자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개별 합의를 포기하기보다는 변호인에게 피고인의 공소사실상 피해자와 피해액, 현재 연락 또는 합의 시도가 가능한 피해자, 합의가 어려운 피해자를 구분해 설명해 달라고 요청해볼 필요가 있다.
변호사가 피해자를 찾아서 합의까지 해주는 일 아닌가요?
변호인을 선임했다고 해서 모든 사건에서 피해자 전원을 직접 찾아 반드시 합의를 성사시켜야 한다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선임계약의 범위와 사건 상황에 따라 변호인의 업무범위가 달라질 수 있고,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제한돼 변호인이라고 하더라도 원하는 방식으로 연락처를 확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또 피해자가 연락 자체를 원하지 않는 사건이라면 무리한 접촉을 반복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합의 업무를 요청해 선임했다면 현재 어떤 피해자가 확인됐는지, 실제 합의 시도를 했는지, 합의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지, 공탁을 권한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어느 정도 금액을 공탁하려는 것인지 설명을 요청할 수 있다.
단순히 “피해자가 많아서 공탁하자”는 설명만으로 가족이 큰 금액을 결정하기 어렵다면 구체적인 전략을 다시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공탁하기 전에 최소한 이것은 확인해야
특히 상당한 금액의 공탁을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사건 구조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에게 인정되는 피해자와 피해액이 어느 정도인지, 실제 합의를 시도한 피해자는 몇 명인지, 합의가 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다음 개별 합의를 계속 시도할 것인지, 합의가 사실상 어려운 피해자를 대상으로 형사공탁을 검토할 것인지 판단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공탁금액 역시 단순히 “많이 넣을수록 유리하다”고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사건의 피해 규모와 피고인의 가담 정도, 이미 이루어진 피해회복, 경제적 상황 등을 함께 살펴 전략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다.
공탁금을 넣었다가 ‘돈만 날리는 것’일까?
가족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가장 걱정되는 문제다.
형사공탁은 양형 결과를 구매하는 제도가 아니다.
따라서 일정 금액을 공탁했다고 그에 비례해 형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기대했던 만큼 감형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반대로 피해자와 합의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피고인이 피해회복을 위해 실제 금전을 마련하고 공탁한 사정이 사건의 구체적인 상황과 함께 평가될 여지도 있다.
결국 “공탁하면 무조건 유리하다”와 “요즘 공탁은 아무 의미 없다”는 두 주장 모두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이다.
합의할 수 있다면 합의부터, 어렵다면 공탁의 의미 따져봐야
피해회복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형량만을 목적으로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피해회복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피해자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합의를 시도할 수 있다면 우선 그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 수 없거나 피해자가 연락을 원하지 않는 등 합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면 형사공탁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특히 피해자가 많고 공범이 여러 명인 사건이라면 가족이 막연히 큰 금액부터 마련하기보다 피고인의 구체적인 가담 범위와 피해관계부터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안기모카페에서도 피해자 합의를 준비하는 가족들이 “공탁이라도 하면 도움이 되는지”, “요즘에는 공탁을 해도 소용없는지”를 묻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탁은 감형을 보장하는 수단도, 아무 의미 없는 절차도 아니다. 자신의 사건에서 어떤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공탁인지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