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죽어도 합의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최근 교정생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성범죄 사건으로 항소심을 준비하고 있는 가족의 사연이 올라왔다.
상대방 측에서는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고 한다.
가족이 가장 궁금했던 것은 한 가지였다.
피해자와 합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항소심에서 형량을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느냐는 것이다.
1심에서 이미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라면 가족에게 ‘합의 실패’는 단순한 협상 실패 이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항소심 준비를 합의 여부 하나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성범죄 항소심이라고 모두 ‘합의하면 감형, 못 하면 기각’은 아냐
형사재판의 양형은 하나의 사정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범행의 내용과 정도, 피해의 결과, 범행 경위, 피고인의 전력, 범행 후 정황, 피해회복 노력 등 사건별 여러 사정이 함께 검토될 수 있다.
피해자와의 합의나 피해자의 처벌 의사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합의 성공=감형’, ‘합의 실패=항소기각’이라는 공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항소심에서는 먼저 1심 판결의 어떤 부분을 다투는 것인지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
먼저 항소이유부터 확인해야
성범죄 사건이라고 해도 항소이유는 사건마다 다르다.
피고인이 범행 자체를 부인하면서 사실오인을 주장하는 사건이 있을 수 있고, 법률 적용에 문제가 있다고 다투는 사건도 있다.
반대로 범행 사실은 인정하면서 1심에서 선고된 형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양형부당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가족이 “합의가 안 되는데 무엇을 더 제출해야 하나요”라고 고민하기 전에 담당 변호인에게 현재 항소이유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양형부당 항소라면 1심이 왜 그 형을 선고했는지 봐야
범행을 인정하고 형량을 줄이는 것이 항소의 핵심 목표라면 1심 판결문 분석이 중요해진다.
1심 재판부가 어떤 사정을 불리하게 평가했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범행의 내용과 피해 정도를 무겁게 평가했는지,
동종 전력이나 재범 위험성을 문제 삼았는지,
피해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고려했는지,
피고인의 범행 후 태도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1심에서 불리하게 판단한 이유를 그대로 둔 채 반성문과 탄원서만 추가한다고 반드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한다면 계속 연락해야 할까
여기에서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피해자가 이미 합의 의사가 없다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했다면 피고인이나 가족이 계속해서 연락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합의를 원한다는 이유로 반복적으로 전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주변 사람을 통해 계속 접촉을 시도한다면 피해자에게 또 다른 부담을 줄 수 있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의사와 안전을 특히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변호인이 있다면 피해자 측과의 연락 가능 여부와 방식부터 변호인을 통해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가족이 직접 찾아가는 것은 더 조심해야
피해자가 연락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가족이 직접 피해자의 집이나 직장 등을 찾아가는 방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족 입장에서는 사과하고 합의 가능성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압박이나 두려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특히 접근이나 연락과 관련한 별도의 제한이 있는 사건이라면 이를 위반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한다.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유가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무시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변호사를 통한 합의 시도도 무한정 반복할 수 있는 것은 아냐
직접 연락 대신 변호사를 통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변호인을 통해 정중하게 합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명확하게 거부했다면 같은 제안을 반복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다시 판단해야 한다.
피해자에게 변호인이 있다면 피해자 본인보다 피해자 측 변호인을 통해 의사를 확인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몇 번 연락했느냐’가 아니라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면서 적절한 방법으로 피해회복 의사를 전달했느냐다.
합의가 안 되면 공탁하면 되는 걸까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사건에서 형사공탁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공탁은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거나 직접적인 피해회복이 어려운 상황에서 피고인이 일정 금액을 공탁하는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공탁과 합의는 같은 것이 아니다.
피고인이 돈을 공탁했다고 해서 피해자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되는 것도 아니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합의가 안 되면 공탁하면 똑같다”거나 “공탁하면 반드시 감형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탁 여부도 사건에 맞게 판단해야
형사공탁을 할지, 한다면 언제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담당 변호인과 사건기록을 토대로 검토하는 것이 좋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한 이유와 현재 피해회복 상황, 1심에서 이미 공탁을 했는지, 재판부가 피해회복 여부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등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탁은 피해회복을 위한 하나의 행동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지만 그 효과는 사건마다 다르다.
단순히 다른 성범죄 사건에서 공탁 후 감형됐다는 사례만 보고 자신의 사건에도 같은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반성문을 많이 쓰면 대신할 수 있을까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들이 가장 많이 준비하는 자료 중 하나가 반성문이다.
반성문 역시 피고인의 범행 후 태도를 보여주는 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반성문을 여러 장 제출했다고 피해자와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처럼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내용의 사과와 후회를 반복하기보다 자신의 행동이 피해자에게 어떤 피해를 주었는지 이해하고 있는지, 재범을 막기 위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재범방지 노력이 특히 중요할 수 있어
항소심을 준비하면서 1심 이후 실제로 달라진 행동이 있다면 객관적인 자료로 정리할 수 있다.
사건의 성격에 따라 성인지 교육이나 재범방지 관련 교육·상담, 전문적인 치료 또는 상담 등이 검토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감형을 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수료증만 모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행동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이해하고 재범을 막기 위해 실제로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프로그램이 자신의 사건에 적절한지는 변호인과 상의해 준비하는 것이 좋다.
가족 탄원서는 어떤 역할을 할까
배우자나 부모 등 가족이 탄원서를 제출할 수도 있다.
가족 탄원서에는 피고인이 평소 좋은 사람이었다는 내용만 반복하기보다 가족이 현재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출소 후 어떤 방식으로 생활을 관리하고 재범방지를 지원할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피해자를 탓하거나 피해자의 행동 때문에 사건이 발생했다는 식의 표현은 피해야 한다.
“피해자도 잘못이 있다”, “합의금을 너무 많이 요구한다”, “처벌을 너무 강하게 원한다”는 내용은 피해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합의를 거부한 피해자를 비난하는 자료는 피해야
가족에게는 합의를 거절하는 피해자가 야속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에 제출하는 반성문이나 탄원서에서 이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하고 엄벌을 요청하는 것은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충분히 사과했는데 왜 받아주지 않느냐”거나 “돈까지 제시했는데 합의를 안 해준다”고 표현한다면 진정한 반성과 배치되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사실은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적 사정만 강조하는 것도 조심해야
실형이 선고되면 가족의 생계와 자녀 양육, 부모 부양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은 사건에 따라 양형자료로 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 힘드니 피해자가 합의해줘야 한다”는 방향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피고인의 수감으로 가족이 겪는 어려움과 피해자가 입은 피해는 별개의 문제다.
가족관계와 생계자료를 제출한다면 실제 부양관계와 경제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필요하다.
1심 이후 새롭게 달라진 사정이 있는지 확인해야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하는 경우에는 1심 선고 이후 새롭게 발생한 사정이 있는지가 중요하게 검토될 수 있다.
1심 이후 피해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재범방지를 위한 상담이나 교육을 시작했는지,
범행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가족이 출소 이후 재범방지를 위해 어떤 환경을 마련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항소심은 단순히 1심에서 제출했던 자료를 한 번 더 내는 절차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항소심에서 합의가 뒤늦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한다고 해서 법적으로 앞으로 영원히 합의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피해자가 스스로 입장을 바꾸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기대하면서 지속적으로 연락하거나 압박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의 의사가 달라졌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때 변호인을 통해 적절한 방식으로 합의를 진행하면 된다.
현재 거부 의사가 명확하다면 우선 그 의사를 존중하면서 다른 항소심 준비를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처벌불원서가 없으면 감형이 불가능한 것도 아냐
가족들은 합의와 함께 처벌불원서를 반드시 받아야 감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성범죄가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만으로 처벌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합의서나 처벌불원서는 피해회복과 피해자의 현재 의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항소심에서 다른 양형사정을 검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처벌불원서를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집행유예나 감형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성범죄는 형량 외의 처분도 함께 살펴봐야
성범죄 사건에서는 징역형의 기간만 확인해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사건에 따라 신상정보 등록, 취업제한, 교육·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 형벌과 함께 또는 별도로 문제되는 제도가 있을 수 있다.
각 처분의 적용 여부와 기간은 범죄유형과 판결내용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항소심을 준비한다면 ‘징역 몇 개월을 줄일 수 있느냐’뿐 아니라 1심 판결에 포함된 전체적인 명령과 부수처분을 변호인과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피고인만 항소했는지도 확인해야
항소심을 준비할 때는 검사도 항소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고인만 항소한 사건이라면 형사소송법상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이 적용돼 원심판결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반면 검사도 형이 너무 가볍다는 등의 이유로 항소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은 피고인의 항소 여부뿐 아니라 검사의 항소 여부와 항소이유도 변호인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항소이유서 제출기한부터 놓치지 않아야
합의 문제에만 집중하다 정작 항소심의 중요한 절차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항소법원이 소송기록을 접수한 뒤 소송기록접수통지를 하면 항소인이나 변호인은 그 통지를 받은 날부터 법에서 정한 기간 안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현재 어떤 항소이유를 주장할 것인지,
1심 판결에서 어떤 부분을 다툴 것인지,
추가 양형자료를 무엇으로 구성할 것인지를 변호인과 빠르게 정리해야 한다.
피해자와 합의가 될 때까지 항소이유서 준비를 미뤄서는 안 된다.
가족이 변호사에게 물어볼 질문은 구체적이어야
“합의가 안 되는데 감형될까요?”라고 묻는 것만으로는 정확한 답을 얻기 어렵다.
현재 항소이유가 양형부당인지,
1심 판결에서 가장 불리하게 평가된 부분이 무엇인지,
피해자 측에 합의 의사를 이미 몇 차례 전달했는지,
추가 접촉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인지,
공탁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지,
1심 이후 새롭게 제출할 수 있는 양형자료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좋다.
검사의 항소 여부와 항소이유서 제출기한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합의가 안 된다고 항소심 준비까지 멈춰서는 안 돼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와의 합의가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특히 피해회복 여부와 피해자의 처벌 의사는 재판 과정에서 의미 있게 검토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합의를 거부한다는 이유만으로 항소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합의를 대신할 수 있는 ‘감형 공식’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사건기록과 1심 판결을 토대로 항소이유를 분석하고, 1심 이후 달라진 사정이 있다면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명확하게 합의를 거부한다면 그 의사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반복적인 연락이나 가족의 직접 방문으로 합의를 압박하기보다 변호인을 통해 추가 접촉이 적절한지 판단하고, 재범방지 노력과 반성, 사회복귀 계획 등 현재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을 차분하게 정리해야 한다.
항소심은 ‘합의를 했느냐, 못 했느냐’ 하나만을 다시 확인하는 재판이 아니다.
1심 판결을 변경할 법적·사실적 이유가 있는지, 양형을 다시 판단할 만한 새로운 사정이 있는지를 사건 전체를 놓고 검토하는 절차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