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무죄를 주장했는데 변호사가 합의를 시도했습니다”
최근 교정·형사절차 정보공유 커뮤니티 안기모카페에 무죄 주장과 형사합의의 관계를 묻는 사연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범죄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형사조사를 받았고 이후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작성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 사이 당시 변호인이 부모에게 피해자와 합의하면 기소유예 가능성이 있고 사건이 빨리 끝날 수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부모는 그 설명을 듣고 합의를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작성자가 다음 날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는 변호인이 이미 경찰을 통해 피해자 측 국선변호사 연락처를 확인한 상태였다고 한다.
작성자는 자신의 의사와 다른 합의 시도였다는 내용이 담긴 카카오톡 대화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이후 작성자는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고 기존 변호인의 사임계를 제출한 뒤 새로운 변호인을 선임했다.
사건은 결국 구공판 처분돼 정식재판을 앞두게 됐다.
합의를 시도했다고 곧바로 혐의를 인정한 것은 아냐
가장 먼저 구분해야 할 것은 ‘합의 시도’와 ‘범죄사실 인정’이다.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하는 이유는 다양할 수 있다.
혐의를 인정하면서 피해회복을 위해 합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범죄사실을 다투면서도 재판 결과에 대비하거나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 합의를 검토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피해자 측에 합의를 제안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피고인이 공소사실 전체를 자백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실제 사건에서는 합의를 제안하면서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합의 과정에서 무슨 말을 했는가’
재판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을 살펴보려면 단순히 합의를 시도했다는 사실보다 구체적인 내용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합의를 제안하는 과정에서 범행을 명시적으로 인정하거나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시인하는 내용이 전달됐다면 이후 무죄 주장과의 관계가 문제될 여지가 있다.
반대로 범죄사실 인정 여부와 별개로 분쟁 해결이나 피해회복 차원에서 합의를 문의한 것이라면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합의 연락을 했다’는 한 문장만 떼어놓고 판단하기보다는 당시 주고받은 연락의 전체 내용과 전후 상황을 확인해야 한다.
본인이 아니라 변호인이 먼저 움직였다면 경위도 확인해야
사연에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정이 있다.
작성자는 자신이 직접 합의를 지시한 것이 아니라 연락이 되지 않는 동안 당시 변호인이 부모와 이야기한 뒤 피해자 측과 접촉을 준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작성자는 다음 날 이를 알게 된 직후 합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변호인도 교체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우라면 누가 합의를 처음 제안했는지, 작성자가 당시 어떤 의사를 표시했는지, 변호인에게 어느 범위까지 권한을 맡겼는지, 피해자 측에는 실제로 어떤 내용이 전달됐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카카오톡이 남아 있다면 함부로 삭제하지 않는 것이 좋아
작성자는 자신의 의사 없이 변호인이 합의를 시도했다는 취지의 카카오톡 대화가 남아 있다고 했다.
현재 변호인과 사건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러한 자료도 보여주는 것이 좋다.
당시 합의 논의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작성자가 언제 이를 알았는지, 이후 어떤 의사를 밝혔는지를 확인하는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특정 메시지 한두 개만 떼어내기보다는 전후 대화까지 포함해 전체 맥락을 확인할 수 있도록 보존하는 편이 좋다.
무죄 주장과 피해회복이 반드시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냐
형사사건을 처음 경험하는 피고인이나 가족들은 “무죄를 주장한다면 절대로 합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건에 따라서는 범죄의 성립 여부를 다투면서 피해자에 대한 피해회복이나 민사적 분쟁 해결을 별도로 검토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방어전략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한편으로는 피해자에게 범행을 인정하는 취지의 사과를 한다면 재판 과정에서 그 의미가 문제될 수 있다.
따라서 무죄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합의 문구와 사과 표현 하나도 현재 변호인과 상의해 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합의하면 기소유예’도 결과를 보장할 수 있는 문제는 아냐
사연에서는 종전 변호인이 합의하면 기소유예가 나오고 사건이 빨리 끝날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피해자와 합의했다고 해서 검사가 반드시 기소유예 처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소유예 여부는 범행 내용과 경위, 피해 정도, 전과, 범행 후 정황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검사가 판단한다.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사실은 사건에 따라 고려될 수 있는 사정이지만 특정 처분을 자동으로 만들어내는 조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사연 속 사건 역시 결국 구공판으로 이어졌다.
구공판이 됐다면 이제 공소장부터 정확하게 확인해야
사건이 구공판 처분됐다는 것은 검사가 사건을 법원의 정식 형사재판으로 넘겼다는 의미다.
이 단계에서는 수사 당시 막연하게 생각했던 혐의보다 실제 공소장에 어떤 공소사실이 기재됐는지가 중요해진다.
무죄를 주장할 예정이라면 현재 변호인과 함께 공소장을 확인하고 검사가 어떤 사실관계를 범죄로 구성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다음 수사단계에서 자신이 했던 진술, 객관적인 증거, 피해자 측 진술, 기존 변호인의 합의 시도 등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수사 때부터 지금까지 진술이 어떻게 이어졌는지도 점검해야
무죄 주장 사건에서는 진술의 일관성이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수사 초기부터 자신이 어떤 내용을 진술했는지 다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했고 이후에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는지, 중간에 달라진 설명은 없는지, 합의 과정에서 기존 진술과 충돌하는 표현이 전달되지는 않았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특히 사건의 핵심 사실관계를 인정했는지 여부와 법률적으로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말하는 ‘무죄 주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변호인과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합의 시도 하나만 보고 재판 결과를 예상해서는 안 돼
작성자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종전 변호인의 합의 시도가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해 무죄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아닌지다.
그러나 재판부는 합의 시도 하나만으로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와 피고인의 주장,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객관적인 자료 등 사건 전체를 토대로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 없이 증명됐는지를 판단한다.
합의 시도 역시 사건에 따라 하나의 정황으로 거론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범죄사실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합의 경위를 시간순으로 정리할 필요
사연과 같은 상황이라면 현재 변호인에게 과거 상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사를 언제 받았는지, 당시 어떤 진술을 했는지, 종전 변호인이 언제 부모와 연락했는지, 피해자 측 접촉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작성자가 언제 이를 알게 됐는지, 합의를 거부한다는 뜻을 언제 밝혔는지, 변호인을 언제 교체했는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사건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관련 문자나 카카오톡이 있다면 날짜가 확인되도록 함께 정리하는 것이 좋다.
새 변호인에게 기존 변호사와 있었던 일까지 알려야
변호사를 교체했다고 해서 이전 변호인과 있었던 일을 현재 변호인에게 숨길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재판에서 상대방이나 검찰이 과거 합의 시도를 언급할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현재 변호인이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어야 대응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
특히 본인의 의사와 달랐다는 점을 주장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는지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죄 주장 사건이라면 앞으로의 합의 접촉도 신중해야
앞으로 다시 피해자 측과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면 현재 변호인과 먼저 상의하는 것이 좋다.
본인이 직접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것은 사건 유형에 따라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피해자가 연락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피해자에게 국선변호사나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선임된 사건이라면 정해진 절차와 대리인을 통해 접촉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합의를 위해 피해자에게 반복적으로 연락하거나 압박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
‘합의했느냐’보다 ‘무엇을 인정했고 어떤 증거가 있느냐’가 핵심
형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공소사실이 증거에 의해 인정되는지 여부다.
피고인이 합의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이뤄졌는지 살펴봐야 하고, 그것만으로 유죄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합의를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무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연처럼 종전 변호인이 본인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합의를 추진했다고 주장하는 경우라면 당시의 연락 내용과 시간순 경위를 보존하고 현재 변호인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죄를 끝까지 다투기로 결정했다면 앞으로는 기존 진술과 객관적인 증거, 공소사실에 대한 반박논리를 중심으로 방어전략을 일관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합의 시도가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재판 결과가 불리하게 정해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재판 과정에서 그 사실이 언급될 가능성까지 고려해 왜 합의 이야기가 나왔고 본인은 당시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