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판사님들이 보석을 잘 허가하지 않나요?”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가족이라면 한 번쯤 보석을 생각하게 된다.
특히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면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도 아닌데 불구속으로 재판받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최근 교정생활 정보공유 커뮤니티 안기모카페에도 보석허가 기준을 묻는 가족의 사연이 올라왔다.
담당 변호사에게서는 “보석이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자 실제 보석이 허가된 사람들은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자신의 사건에서도 가능성이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보석은 판사가 단순히 ‘선처’해 주는 제도가 아냐
보석은 구속된 피고인을 일정한 조건 아래 석방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도록 하는 제도다.
따라서 단순히 사정이 딱하거나 가족들이 간절히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결정되는 절차는 아니다.
반대로 “보석은 원래 거의 허가하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형사소송법에는 보석을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다.
우선 법이 정한 일정한 제외사유가 없다면 보석을 허가하도록 하는 ‘필요적 보석’이 있다.
그리고 필요적 보석의 제외사유에 해당하더라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법원이 보석을 허가할 수 있는 ‘임의적 보석’도 있다.
법에서 먼저 보는 여섯 가지 사유
형사소송법 제95조는 보석 청구가 있을 때 일정한 사유가 없다면 보석을 허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다음과 같은 경우는 필요적 보석의 예외가 된다.
사형·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경우, 누범이나 상습범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증거를 없애거나 없앨 우려가 있다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 도망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포함된다.
주거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피해자나 사건 관계자 또는 그 친족의 생명·신체·재산에 해를 가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볼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 역시 필요적 보석의 예외사유다.
죄명이 같다고 보석 결과까지 같은 것은 아냐
그래서 온라인에서 “저도 같은 죄명인데 보석됐어요”라는 사례를 봤다고 해도 자신의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같은 죄명이라도 피고인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공소사실과 적용되는 법정형부터 다를 수 있고, 공범이나 관련자가 있는지도 차이가 날 수 있다.
주요 증거가 이미 확보됐는지, 앞으로 증인신문이 필요한지, 피해자나 사건 관계자와 접촉할 가능성이 있는지 등도 사건마다 다르다.
결국 다른 사람의 보석 결과보다 자신의 사건에서 구속을 계속할 필요성이 어떻게 판단될지가 중요하다.
무죄를 주장하면 보석이 더 어려워질까
이번 사연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이다.
현재 피고인은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한다’는 사실 자체가 형사소송법 제95조에 규정된 독립적인 보석 불허 사유는 아니다.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한다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보석이 불가능해지는 구조는 아니라는 의미다.
다만 무죄 주장과 별개로 사건의 구체적인 상황은 살펴봐야 한다.
혐의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증거 문제가 중요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앞으로 중요한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거나 피고인과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사건이라면 법원이 증거인멸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
공범이나 사건 관계자와 연락할 가능성이 문제 되는 사건도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주요 증거가 이미 확보됐고 관련자에 대한 조사가 상당 부분 끝났다면 변호인이 그러한 사정을 보석 청구 과정에서 설명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히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가 아니다.
현재 재판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고 구속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할 사유가 남아 있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다.
도주 우려도 중요한 판단 요소
보석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도주 우려’다.
형사소송법 역시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를 필요적 보석의 제외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보석을 청구하면서 안정적인 주거, 가족관계, 직업 등 피고인이 재판에 계속 출석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나 직장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도주 우려가 없다고 자동 판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사건 전체를 놓고 판단한다.
필요적 보석이 어렵더라도 임의적 보석이 있어
필요적 보석의 제외사유에 해당한다고 해서 보석 가능성이 법적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형사소송법 제96조는 제95조의 경우에도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법원이 직권 또는 보석 청구권자의 청구에 따라 보석을 허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흔히 임의적 보석이라고 한다.
따라서 보석 여부를 단순히 “제95조 예외에 해당하니까 끝”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사건의 진행 정도와 구속 필요성, 피고인의 여러 사정을 종합해 법원이 판단하게 된다.
보석이 허가되더라도 그냥 풀려나는 것은 아냐
보석이 허가되면 법원은 필요한 범위에서 하나 이상의 조건을 붙이도록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법원이 정한 날짜와 장소에 출석하고 증거를 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할 수 있다.
주거를 일정한 장소로 제한하거나 변경할 때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조건도 가능하다.
피해자나 사건 관계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제한할 수도 있다.
법원 허가 없이 해외로 출국하지 않겠다는 조건이나 보증금과 관련된 조건 등이 붙을 수도 있다.
따라서 보석은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생활하도록 하는 절차라기보다 재판 출석과 증거보전 등을 확보하면서 구속을 풀어주는 제도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보석 청구 뒤 검사의 의견을 듣는 절차도 있어
보석을 청구하면 법원은 바로 허가나 기각을 결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형사소송법은 재판장이 보석에 관한 결정을 하기 전에 검사의 의견을 묻도록 규정하고 있다.
검사는 이에 대해 지체 없이 의견을 밝혀야 한다.
따라서 보석을 신청한 뒤 사건 진행상황을 확인하다가 ‘검사 의견서 제출’과 같은 절차를 보게 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보석이 허가되거나 기각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심사 과정의 하나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해서 보석됐나요?”보다 중요한 질문
가족 입장에서는 실제 보석된 사람들의 사례가 가장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사건의 결과만 비교하면 오히려 혼란이 커질 수 있다.
같은 죄명이라도 적용 법조와 공소사실, 공범 관계, 증거관계, 재판 진행상황이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당 변호사에게는 “보석 가능성이 있나요?”라는 질문만 하는 것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재 사건에서 법원이 구속을 계속해야 한다고 볼 가능성이 있는 사유가 무엇인지,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와 관련해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우려를 설명할 객관적인 자료가 무엇인지도 함께 물어볼 수 있다.
가족이 준비할 자료도 사건에 맞아야 해
보석을 준비한다고 무조건 많은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정적으로 거주할 장소가 있다면 그 사실을 확인할 자료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가족이 피고인의 재판 출석과 생활을 지원할 수 있다면 그 구체적인 계획을 설명할 수도 있다.
직장이나 생업으로 복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관련 자료를 검토할 수도 있다.
피해자나 사건 관계자와 접촉하지 않겠다는 점이 중요하다면 이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설명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는 결국 해당 사건에서 법원이 우려할 만한 부분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보석과 무죄 여부는 별개의 판단
보석이 허가됐다고 재판부가 피고인의 무죄를 인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보석이 기각됐다고 해서 유죄가 확정됐다는 뜻도 아니다.
보석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피고인의 구속 상태를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는지를 판단하는 절차다.
유죄·무죄와 최종 형량은 본안 재판에서 별도로 판단한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으면 보석 결과 하나에 가족들의 기대와 불안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
변호사의 “쉽지 않다”는 말도 이유를 구체적으로 물어봐야
이번 사연처럼 변호사에게 “보석은 쉽게 허가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설명을 들었다면 그 말만 듣고 가능성이 없다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반대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석이 당연히 허가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도 안 된다.
더 중요한 질문은 ‘우리 사건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다.
적용되는 범죄의 법정형이 필요한 보석의 예외사유와 관련되는지,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지, 도주 우려가 쟁점인지, 피해자나 사건 관계자와의 접촉 문제가 있는지 등을 하나씩 확인해야 한다.
변호사가 보석 신청 시기를 조금 기다리자고 한다면 왜 지금보다 이후가 낫다고 판단하는지도 물어볼 수 있다.
보석은 다른 사람의 결과보다 ‘내 사건의 구속 사유’를 보는 절차
구속된 가족을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밖에서 재판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래서 안기모카페에서도 보석 인용 사례와 신청 시기, 결정까지 걸리는 시간을 묻는 글이 계속 올라온다.
하지만 보석에는 “이 조건을 갖추면 반드시 허가된다”는 공식이 없다.
무죄를 주장한다고 자동으로 허가되는 것도 아니고, 중한 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보석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형사소송법이 정한 보석 기준과 함께 자신의 사건에서 실제로 어떤 구속 필요성이 문제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보석 성공사례를 찾는 것보다 담당 변호인에게 현재 사건의 증거인멸·도주 우려와 재판 진행상황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먼저인 이유다.
보석은 누군가의 사례를 따라 준비하는 절차가 아니라, 지금 이 피고인을 계속 구속한 상태에서 재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씩 따져보는 절차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