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는 포기했지만 작은 돈이라도 피해금을 갚고 싶어요”
형사재판이 끝나간다고 피해자에 대한 마음까지 함께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실형이 선고되고 더 이상 판결을 다투지 않기로 결정한 뒤에도 피해자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변제하고 싶어 하는 피고인과 가족들이 있다.
최근 교정생활 정보공유 커뮤니티 안기모카페에도 항소심 판결 이후 상고포기서를 제출했지만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하고 싶다는 가족의 질문이 올라왔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변호사를 통해 피해자에게 합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항소심을 담당했던 변호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상고 단계에서 선임한 변호사에게 부탁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상고포기와 피해자 합의는 별개의 문제
먼저 상고를 포기했다는 것과 피해자에게 피해금을 변제하는 것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 등이 상소를 포기하거나 취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고포기서를 제출했다면 이는 대법원에 판결을 다시 판단해달라고 요구하는 상고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소송절차상의 의사표시다.
피해자에게 피해금을 갚거나 사과하고 합의를 시도하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절차는 아니다.
따라서 상고를 포기했다고 해서 피해변제를 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판에서 형을 줄이기 위한 합의’와는 상황이 달라져
중요한 차이는 시점이다.
1심이나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일 때 합의가 이뤄지면 피해회복이나 처벌불원 등의 사정이 재판에서 양형자료로 검토될 수 있다.
하지만 상고를 포기해 판결이 확정되는 상황이라면 앞으로 해당 형사재판에서 새로운 양형자료를 제출해 형을 다시 정해달라고 요구하는 단계와는 다르다.
따라서 “지금 합의하면 형량이 줄어드는가”와 “지금이라도 피해를 갚을 수 있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상고포기 이후의 피해변제는 단순히 형량을 낮추기 위한 자료라는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상고포기서를 냈다면 판결 확정 여부부터 확인
상고포기서를 제출했다면 현재 판결이 확정됐는지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형사소송법은 상소의 포기 또는 취하를 허용하고 있으며 상소를 취하하거나 상소의 포기·취하에 동의한 사람은 같은 사건에 대해 다시 상소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다만 형사사건에는 검사도 상고할 수 있기 때문에 피고인이 상고를 포기했다는 사실만 보고 모든 절차가 끝났다고 단정하기보다 사건의 실제 확정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판결이 확정됐다면 이후의 합의와 피해변제는 진행 중인 상급심에서 제출할 양형자료라는 성격과는 더욱 구별된다.
그래도 피해금을 갚는 것은 가능해
재판이 끝났다고 피해자의 손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재산범죄나 금전적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라면 형사재판과 별도로 피해자에게 남아 있는 손해가 있을 수 있다.
피고인이 이를 갚고 싶다면 피해자와 협의해 변제할 수 있다.
전액을 한 번에 마련하기 어렵다면 일부 금액을 먼저 지급하고 나머지 변제방법을 협의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피해자가 반드시 합의에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 측에서 피해회복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는 합의를 거부할 수 있고 연락 자체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기보다 기존 변호인을 먼저 확인하는 이유
가족 입장에서는 피해자 전화번호나 계좌번호를 알고 있다면 직접 연락하고 싶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형사사건에서는 신중해야 한다.
특히 피해자가 피고인이나 가족의 직접 연락을 원하지 않는 경우 반복적인 연락은 오히려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미 변호인을 통해 합의를 진행했던 사건이라면 기존 합의창구가 어떻게 마련돼 있었는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다.
변호인이 피해자 측 또는 피해자 측 대리인과 연락을 주고받아 왔다면 그 경로를 이용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항소심 변호사에게 연락해야 할까, 상고심 변호사에게 해야 할까
이 질문은 사건마다 답이 달라질 수 있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어느 변호사의 선임관계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지다.
상고심 변호사를 별도로 선임했다면 해당 변호사에게 현재 사건상태와 합의 진행 가능 여부를 문의할 수 있다.
반면 상고심 변호사를 별도로 선임하지 않았고 항소심 변호사가 그동안 피해자 측과 합의를 진행해왔다면 항소심 변호사에게 먼저 연락해 기존 합의창구를 다시 이용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즉 ‘상고포기 후에는 반드시 상고심 변호사에게 연락해야 한다’거나 ‘무조건 항소심 변호사에게 해야 한다’는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피해자와 연락했던 변호사가 있다면 먼저 물어볼 수 있어
실무적으로는 기존에 피해자 측과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다.
항소심 과정에서 담당 변호사가 피해자나 피해자 변호사와 합의 여부를 협의해왔다면 이미 연락경로가 마련돼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가족이 새로운 경로로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하기보다 기존 담당 변호사에게 “상고는 포기했지만 피해금을 조금이라도 변제하고 싶다”고 의사를 전달해볼 수 있다.
변호사의 형사사건 위임업무가 이미 종료됐다면 추가적인 합의업무를 진행할 수 있는지, 별도의 비용이나 위임이 필요한지도 확인하면 된다.
변호사가 선임돼 있다고 합의를 대신해줄 의무가 계속되는 것은 아냐
이 부분도 가족들이 오해하기 쉽다.
항소심에서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해서 판결 이후에도 계속해서 피해자와 합의를 진행해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와 체결한 위임계약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항소심 판결 선고로 위임업무가 종료됐다면 이후 피해자와 추가 협상을 진행하는 업무는 별도로 협의해야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전 변호사에게 연락할 때는 단순히 “합의해주세요”라고 하기보다 현재 위임관계가 종료됐는지, 피해자 측에 변제 의사를 전달해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작은 돈이라도 갚고 싶다’면 먼저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해야
피해금 전액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가족은 “조금이라도 먼저 보내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계좌를 알고 있다고 해서 설명 없이 임의로 송금하는 것이 항상 적절한 방식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일부 변제가 합의의 일부인지, 단순한 피해금 일부 지급인지, 나머지 금액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불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피해자 또는 피해자 대리인과 의사를 확인하고 어떤 방식으로 피해금을 지급할 것인지 정리하는 것이 좋다.
일부 변제와 ‘합의 완료’는 같은 말이 아냐
피해금 일부를 지급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피해자와 합의가 성립했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합의는 당사자 사이에서 어떤 내용에 합의했는지가 중요하다.
피해금 가운데 일부만 지급하고 나머지를 추후 지급하기로 했다면 그 내용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까지 표시하는지 역시 별개의 문제다.
따라서 일부 금액을 지급한 사실만으로 ‘합의 완료’, ‘처벌불원’이라고 표현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가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면 반복적으로 접촉하지 않아야
피해회복 의도가 선하더라도 상대방의 의사는 존중해야 한다.
피해자가 이미 합의를 거부했거나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면 가족이 여러 차례 전화하거나 지인을 통해 계속 접촉하는 방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변호인을 통해 한 차례 피해변제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피해회복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기도 한 만큼 피해자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면 형사공탁을 바로 하면 될까
피해자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가족들은 형사공탁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상고포기 후 판결이 확정되는 시점이라면 재판 중 양형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형사공탁과는 상황이 다르다.
특히 형사공탁 특례는 법원에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경우를 전제로 하는 제도이므로 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서 같은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에게 금전을 지급할 다른 법률적 방법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현재 사건의 확정 여부와 채권관계를 확인해 변호사 등에게 적절한 방법을 문의하는 것이 좋다.
형이 확정된 뒤 합의했다고 형량이 다시 바뀌는 것은 아냐
가족이 꼭 구분해야 하는 부분이다.
판결이 확정된 뒤 피해자와 합의했다고 해서 확정된 징역형이 자동으로 줄어들거나 집행유예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형사재판에서 양형을 판단하는 단계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결 확정 이후의 피해변제를 두고 “합의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형이 다시 줄어들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다만 피해자에게 발생한 실제 손해를 회복한다는 의미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형생활 이후의 절차와 연결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형이 확정돼 수형생활을 하게 된다면 이후 교정절차에서는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피해회복이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이행했는지가 향후 어떤 절차에서 어떤 자료로 확인되는지는 해당 제도의 기준에 따라 별도로 살펴봐야 한다.
따라서 판결 이후 피해금을 변제했다면 송금내역이나 합의서 등 실제 피해회복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보관해두는 것이 좋다.
다만 합의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교정처우나 가석방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피해를 갚고 싶다면 순서를 정해서 확인해야
상고포기서를 제출한 가족이라면 우선 현재 판결이 실제로 확정됐는지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다음 기존 항소심 또는 상고 단계에서 피해자 측과 연락했던 변호사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기존 변호사가 있다면 피해자 측에 피해변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지, 현재 위임관계에서도 추가 합의업무가 가능한지를 문의하면 된다.
피해자가 변제 의사를 받아들인다면 지급금액과 방법, 합의서 작성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돈을 지급했다면 관련 자료를 반드시 남겨두는 것이 좋다.
재판이 끝난다고 피해회복의 의미까지 끝나는 것은 아냐
상고를 포기한다는 것은 더 이상 상급법원에서 판결을 다투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그렇다고 피해자에게 남아 있는 피해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형량을 낮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발생시킨 피해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 싶다면 그 의사를 전달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피해자의 선택이 우선돼야 한다.
이미 재판이 끝나가는 상황이라면 더욱 “이 합의서를 어디에 제출하면 형이 줄어들까”라는 접근보다는 “피해자에게 남은 피해를 어떤 방법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상고를 포기한 뒤에도 피해회복은 가능하다.
달라지는 것은 합의의 가능성 자체가 아니라 그 합의가 형사절차에서 갖는 의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