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방지서약서는 제가 쓰고 준법서약서는 안쪽이가 쓰는 건가요?”
주말 아침부터 가족의 재판에 제출할 양형자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성문과 탄원서를 챙기고 인터넷과 카페에서 필요한 자료를 찾다 보면 처음 보는 서류도 계속 나온다.
최근 교정생활 정보공유 커뮤니티 안기모카페에도 준법서약서와 재범방지서약서를 내려받았는데 각각 누가 작성해야 하는지 묻는 글이 올라왔다.
수용 중인 가족이 작성해야 하는 서류와 밖에 있는 가족이 작성해야 하는 서류가 따로 있는지, 모두 자필로 작성하는 것이 좋은지도 궁금하다는 내용이었다.
먼저 ‘누가 서약하는 문서인지’ 확인해야
결론부터 말하면 문서 제목만으로 “재범방지서약서는 가족, 준법서약서는 피고인”이라고 일률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먼저 내려받은 양식의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
서약서 본문에 ‘본인은 앞으로 법을 준수하겠습니다’, ‘다시는 같은 범죄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처럼 피고인 자신의 행동을 약속하는 내용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그 약속의 주체는 피고인이 된다.
반대로 가족이 피고인의 재범을 막기 위해 생활을 관리하고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라면 가족이 작성하는 형태의 자료일 수 있다.
따라서 문서 제목보다 본문에서 누가 무엇을 약속하도록 만들어진 양식인지를 보는 것이 먼저다.
준법서약서와 재범방지서약서는 모든 형사재판의 필수서류가 아냐
가족들이 인터넷에서 여러 양형자료를 찾다 보면 마치 정해진 서류를 모두 갖춰야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서 모든 피고인이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하나의 통일된 ‘준법서약서’ 또는 ‘재범방지서약서’ 양식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이나 관련 커뮤니티에서 내려받는 양식 가운데에는 피고인의 준법 의지나 재범방지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참고자료 형태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따라서 어떤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불이익을 받는다거나, 특정 양식을 제출하면 자동으로 형이 줄어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이런 서약서는 왜 제출할까
법원이 형을 정할 때는 범행 자체만 보는 것이 아니다.
형법은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범방지를 위해 실제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사건 이후 생활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지 등을 설명하는 자료도 이러한 사정을 보여주기 위해 활용될 수 있다.
즉 서약서의 의미는 제목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재범방지서약서는 피고인이 작성하는 형태가 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아
일반적으로 ‘재범방지서약서’라는 이름으로 사용되는 양식은 피고인 본인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다는 내용을 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범행과 관련된 생활습관을 바꾸거나 치료·상담을 지속하고, 특정 환경을 피하거나 가족의 관리를 받겠다는 식이다.
이처럼 자신의 행동을 바꾸겠다는 내용이라면 당사자인 피고인이 작성하는 것이 문서의 취지에 자연스럽다.
가족이 대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라고 서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족은 ‘재범방지 조력계획’을 작성할 수도 있어
그렇다고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피고인이 사회로 돌아왔을 때 가족이 실제로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면 별도의 탄원서나 가족의 재범방지 조력계획 형태로 정리할 수 있다.
주거를 함께하며 생활을 관리할 것인지, 치료나 상담이 필요한 경우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인지, 경제활동이나 사회복귀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등이다.
중요한 것은 가족이 피고인을 대신해 재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준법서약서 역시 서약 주체를 확인해야
준법서약서는 보통 앞으로 법질서를 준수하고 위법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는다.
이러한 내용이라면 역시 피고인 본인이 서약하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실제로 과거 특정 가석방 절차에서 사용된 준법서약서도 서약자 본인이 법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취지의 내용을 작성하는 형태였다.
다만 카페에서 내려받은 준법서약서가 그와 동일한 공식서식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같은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제작자와 사용 목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현재 가지고 있는 양식의 서약인과 작성방법을 확인해야 한다.
모두 자필로 작성해야 효력이 있을까
또 하나 많이 궁금해하는 것이 자필 여부다.
반성문은 피고인이 직접 자신의 생각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준법서약서와 재범방지서약서 역시 모든 문장을 반드시 자필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반적인 참고용 양형자료에 대해 “모든 내용을 반드시 자필로 작성해야 인정된다”는 일률적인 법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해당 양식에 자필 작성이라는 안내가 있는지, 변호인이나 제출기관에서 별도로 자필 작성을 요구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출력된 양식에 서명만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
자필인지 출력물인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도 있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은 서약서에 이미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고 피고인이 이름과 서명만 적는다면 피고인 개인의 재범방지 계획은 거의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가능하다면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 실제로 무엇을 바꿀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서약서의 목적에 더 맞는다.
재판부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글씨를 얼마나 많이 손으로 썼느냐보다 사건 이후 어떤 변화와 노력이 있었는지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에서 한 단계 더 구체적으로
재범방지 계획을 작성한다면 추상적인 다짐에서 끝나지 않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음주가 범행과 직접적으로 관련됐다면 음주를 끊거나 관리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시작했는지 설명할 수 있다.
도박이 문제였다면 도박사이트 접근 차단이나 경제관리 방법, 상담 계획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성범죄나 폭력범죄 등 다른 유형의 사건 역시 해당 범행이 발생한 원인과 환경에 맞춰 재범방지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
모든 사건에서 똑같은 문구를 사용하는 것보다 자신의 사건과 연결되는 계획이 중요하다.
실제로 시작한 행동이 있다면 함께 정리
서약서에 적은 계획 가운데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실제 치료를 받고 있다면 치료자료, 상담을 지속하고 있다면 상담 관련 자료, 관련 교육을 이수했다면 실제 이수 사실을 확인할 자료 등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서약서에 적기 위해 필요하지 않은 교육이나 상담을 형식적으로 늘릴 필요는 없다.
사건과 관련된 문제를 실제로 개선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혐의를 다투고 있다면 서약서 표현도 조심해야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사건이라면 재범방지서약서를 작성하는 방향을 비교적 쉽게 정할 수 있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거나 범행 일부를 다투고 있는 사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가 저지른 범죄를 깊이 반성합니다’와 같은 표현이 현재 법정에서 하고 있는 주장과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혐의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서약서뿐 아니라 반성문·탄원서 등 양형자료 전체의 표현을 담당 변호인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양식을 많이 채우는 것이 양형자료 준비의 목적은 아냐
가족 입장에서는 불안할수록 자료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제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준법서약서, 재범방지서약서, 반성문, 탄원서, 가족서약서 등 이름이 다른 문서를 계속 추가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용이 거의 같은 문서를 여러 장 만드는 것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다.
피고인의 반성, 피해회복, 재범방지 노력, 가족의 지원계획 등 사건에서 실제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 내용을 구분해 준비하는 편이 낫다.
수용 중이라면 가족이 양식을 보내줄 때도 확인해야
피고인이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용돼 있다면 가족이 밖에서 양식을 출력해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이때도 단순히 “여기에 서명해서 다시 보내줘”라고 하기보다 이 서류가 어떤 목적으로 작성되는 것인지 피고인이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작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피고인 본인이 자신의 상황에 맞춰 내용을 추가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도 있다.
다만 시설 내 우편물 반입이나 문서 전달방법 등은 해당 교정시설의 안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변호인이 있다면 제출 전 한 번에 확인하는 것이 좋아
양형자료를 여러 종류 준비하고 있다면 작성할 때마다 각각 보내기보다 현재 준비한 자료 목록을 정리해 담당 변호인에게 확인받는 방법도 있다.
어떤 자료가 실제 사건에서 필요한지, 내용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지, 언제 제출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함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약서에 적힌 내용이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이나 변론 방향과 맞지 않는다면 수정이 필요할 수 있다.
자필인지보다 ‘누가 무엇을 약속하는가’가 먼저
양형자료를 준비하는 가족에게는 작은 형식 하나도 걱정거리가 된다.
출력해도 되는지, 자필이어야 하는지, 가족이 써야 하는지 수용 중인 피고인이 써야 하는지 하나하나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준법서약서와 재범방지서약서는 제목만 보고 작성자를 정할 수 있는 서류가 아니다.
먼저 그 양식에서 누가 무엇을 약속하도록 돼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피고인이 자신의 준법과 재범방지를 약속하는 내용이라면 피고인이 작성하고, 가족이 사회복귀 이후 관리와 지원을 약속하는 내용이라면 가족의 역할을 중심으로 별도의 자료를 준비할 수 있다.
그리고 별도의 자필 작성 요구가 없다면 모든 문장을 손으로 베껴 쓰는 것 자체에 지나치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서약서에 적힌 약속이 자신의 사건과 맞고 실제로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인가 하는 점이다.
양형자료는 서류의 종류를 하나씩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사건 이후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지를 재판부에 설명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