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벌탄원서가 몇 건 들어왔는데 저희도 빨리 탄원서를 내야 할까요?”
가족이 형사사건에 연루되면 처음 접하는 단어가 많아진다.
공소장, 공판기일, 의견서, 양형자료에 이어 탄원서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교정생활 정보공유 커뮤니티 안기모카페에도 탄원서를 언제, 어디에 제출해야 하는지 묻는 가족의 글이 올라왔다.
특히 사건 진행내역에는 이미 엄벌탄원서가 여러 건 제출된 것으로 나타나 더욱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탄원서는 빨리 낼수록 좋은가요?”
“어디에 제출해야 하나요?”
“엄벌탄원서가 여러 건 들어오면 형량에도 변화가 생기나요?”
형사재판을 처음 경험하는 가족이라면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질문이다.
탄원서는 ‘먼저 내는 사람이 유리한 서류’가 아냐
탄원서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생각은 일종의 속도 경쟁이라는 생각이다.
상대방이 엄벌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가족도 하루라도 빨리 탄원서를 제출해야 균형이 맞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사건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와 탄원서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다.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 담당 재판부가 형을 정하기 전에 탄원서가 기록에 들어가 검토될 수 있도록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사건 초기에 한 번 제출하면 끝나는 것도 아니다.
사건이 진행되면서 피고인의 상황이나 피해회복 정도 등 새로운 사정이 생겼다면 그 내용에 맞춰 추가 자료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탄원서를 어디에 내야 하는지는 현재 사건 단계부터 확인
탄원서를 제출할 기관은 현재 사건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직 경찰에서 수사 중인지, 검찰로 송치돼 검사가 수사하고 있는지, 이미 기소돼 법원에서 재판 중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법원에 기소된 사건이라면 해당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법원과 재판부에 제출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이다.
이때 사건번호와 피고인 이름 등 사건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정확하게 기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변호인이 선임돼 있다면 가족이 개별적으로 여러 서류를 보내기보다 변호인에게 탄원서를 전달해 다른 양형자료와 함께 정리해서 제출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법원에 제출할 때는 ‘어느 사건의 탄원서인지’ 알 수 있어야
법원에는 수많은 형사사건이 동시에 진행된다.
따라서 탄원서에는 어느 사건에 관한 서류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사건번호와 피고인 등을 정확하게 적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이 사건번호를 모른다면 법원 사건조회나 변호인을 통해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특히 1심이 끝나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면 1심 사건번호만 적어 이전 법원에 보내는 식으로 처리하기보다 현재 항소심 사건번호와 담당 법원을 확인해야 한다.
탄원서는 현재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가 볼 수 있도록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선고 직전에 급하게 내는 것보다 여유 있게 준비하는 편이 좋아
탄원서에 법으로 정해진 ‘공판 며칠 전까지’라는 하나의 제출기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실제로 기록을 검토하고 양형을 판단할 시간을 생각할 필요는 있다.
특히 선고를 코앞에 두고 많은 자료를 한꺼번에 제출하는 것보다는 현재 재판 진행상황을 확인하면서 준비된 자료를 적절한 시기에 제출하는 편이 낫다.
변호인이 있다면 언제까지 자료를 전달해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재판부별 사건 진행상황과 변론종결 여부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엄벌탄원서가 제출됐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건조회에서 ‘엄벌탄원서 제출’이라는 문구를 처음 발견한 가족은 크게 놀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엄벌탄원서는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 등 사건관계인이 피고인에 대한 엄한 처벌을 바라는 취지의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서류다.
하지만 사건 진행내역에 엄벌탄원서가 올라왔다는 사실만으로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떤 사실을 적었는지에 따라 내용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엄벌탄원서 3건’이라는 숫자만 보고 형량이 얼마나 늘어날 것이라고 계산할 수는 없다.
엄벌탄원서가 많으면 형량이 그만큼 늘어날까
형사재판의 형량은 탄원서 숫자를 더하고 빼서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형법은 형을 정할 때 범인의 연령·성행·지능과 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 정황 등을 참작하도록 하고 있다.
범죄유형에 따라 적용되는 양형기준에서도 피해회복이나 처벌불원, 진지한 반성 등 여러 요소가 함께 고려될 수 있다.
따라서 엄벌탄원서가 여러 건 제출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특정 형량이 결정된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피해자의 엄벌 의사를 가볍게 볼 수도 없어
반대로 “탄원서는 형량에 아무 영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피해자의 처벌에 관한 의사는 사건과 범죄유형에 따라 양형 과정에서 검토될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여러 범죄군 양형기준에서도 피해자의 처벌불원이나 실질적인 피해회복 등을 양형인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결국 피해가 얼마나 회복됐는지, 피해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등이 양형과 관련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엄벌탄원서가 제출됐다면 단순히 맞대응 탄원서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왜 피해자가 엄벌을 요구하고 있는지, 현재 피해회복은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가족 탄원서는 무엇을 적어야 할까
가족 탄원서는 단순히 “선처해 주세요”라는 문장을 반복하는 서류가 될 필요는 없다.
가족이 직접 알고 있는 피고인의 생활과 사건 이후 변화, 앞으로 가족이 어떤 방식으로 피고인의 사회복귀를 돕고 관리할 것인지 등을 사실에 맞게 적을 수 있다.
다만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내용은 신중해야 한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방향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데 가족 탄원서에서는 피해자를 탓한다면 전체적인 양형자료의 방향과 충돌할 수도 있다.
반대로 피고인이 혐의를 다투고 있는 사건이라면 가족이 임의로 범행을 인정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변호인이 있다면 탄원서 내용이 현재 재판에서의 주장과 충돌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탄원서 여러 장을 모으면 더 효과가 있을까
가족, 친척, 친구, 직장동료에게 최대한 많은 탄원서를 받아 제출하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탄원서는 단순한 서명 숫자 경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여러 사람이 이름만 바꿔 제출하기보다 탄원인이 실제로 알고 있는 사실과 피고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작성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부모라면 출소 후 주거와 생활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배우자라면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직장 관계자라면 실제 근무관계나 복귀 가능성 등 자신이 직접 알고 있는 내용을 작성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장인가’보다 ‘무엇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실을 말하고 있는가’다.
엄벌탄원서가 들어왔다면 맞대응보다 피해회복 상황부터 확인
가족이 엄벌탄원서를 발견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선처탄원서를 많이 모으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라면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피해금이 남아 있는지, 합의가 가능한 상황인지, 이미 일부 변제가 이뤄졌는지, 피해자가 직접 연락을 원하지 않는 상황인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사건에 따라서는 피해회복을 위한 실제 노력과 재범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변화가 단순한 탄원서 숫자보다 중요한 양형자료가 될 수 있다.
피해자가 엄벌을 요구한다고 무리하게 연락해서는 안 돼
엄벌탄원서를 확인한 뒤 가족이 피해자에게 직접 연락해 마음을 돌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면 반복적인 연락은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범죄유형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부적절한 합의 시도나 압박이 불리하게 평가될 수도 있다.
합의나 피해변제를 시도해야 한다면 변호인을 통해 적절한 방법을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탄원서 한 장을 없애거나 처벌불원서를 받아내겠다는 생각으로 피해자에게 무리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탄원서를 이미 냈는데 새로운 내용이 생겼다면
한 번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추가 탄원서를 절대 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실제로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면 이를 추가로 알릴 필요가 있는지 검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해회복이 이뤄졌거나 출소 후 주거·취업 계획이 구체화되는 등 기존 탄원서를 작성했을 때와 달라진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같은 사람이 비슷한 내용의 탄원서를 반복적으로 제출하는 것보다 새롭게 전달할 의미 있는 내용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가족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현재 재판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건조회에 ‘엄벌탄원서’라는 문구부터 발견하면 가족은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순서를 정해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경찰·검찰 수사단계인지 법원 재판단계인지, 법원이라면 어느 법원 어느 재판부인지, 사건번호가 무엇인지, 다음 공판기일과 선고기일은 언제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변호인이 있다면 탄원서를 언제까지 전달하면 되는지와 현재 준비하고 있는 다른 양형자료가 무엇인지도 함께 물어볼 수 있다.
탄원서는 ‘빨리’보다 ‘제대로’가 중요해
탄원서를 처음 준비하는 가족에게는 다른 사람이 먼저 엄벌탄원서를 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우리도 빨리 무언가를 제출해야 하지 않을까, 상대방이 여러 장을 냈으니 우리도 그보다 많이 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형사재판은 탄원서의 제출순서나 장수를 비교해 형을 정하는 절차가 아니다.
현재 재판단계에 맞는 곳에 제출하고, 탄원인이 실제로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작성하며, 피고인의 재판상 주장이나 다른 양형자료와 충돌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벌탄원서가 몇 건 제출됐다는 사실만 보고 앞으로의 형량을 미리 단정할 수도 없다.
가족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서둘러 종이 한 장을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현재 사건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파악하고, 피고인을 위해 실제로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정리하는 일이다.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사건번호 하나, 다음 재판 날짜 하나, 제출할 자료 하나씩 확인하다 보면 막막하게만 보였던 재판절차도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