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데 벌써 날짜가 잡혔습니다”

형사사건 항소심을 준비하는 가족들에게 재판 날짜는 민감한 문제다.

최근 교정생활 정보공유 커뮤니티 안기모카페에도 항소심 기일이 지정된 뒤 불안해하는 가족의 사연이 올라왔다.

가족은 여러 사정 때문에 항소심을 조금 길게 가져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재판 날짜가 잡혔다.

변호인에게 기일 연기를 요청했고 변호인 역시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확답을 받지는 못했다고 했다.

가족은 결국 이런 질문을 남겼다.

“항소심 연기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나요?”

먼저 ‘항소 연기’와 ‘공판기일 변경’은 구분해야

가족들이 흔히 “항소를 연기한다”, “항소재판을 미룬다”고 표현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이미 진행 중인 항소 자체를 연기하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현재 지정돼 있는 항소심 재판 날짜를 다른 날짜로 옮겨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라면 통상 공판기일 변경 신청의 문제다.

형사소송법은 재판장이 직권으로 또는 검사·피고인·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공판기일을 변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변호인을 통해 공판기일 변경을 신청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하지만 신청했다고 자동으로 날짜가 바뀌는 것은 아냐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법에는 재판장이 신청에 따라 공판기일을 ‘변경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즉 신청서를 제출하면 무조건 변경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종적으로 기일을 변경할 것인지는 재판부가 판단한다.

따라서 변호사가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서도 “반드시 연기된다”고 확답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변호인이 기일변경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이를 허가할 권한까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일변경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어

그렇다.

신청을 했더라도 재판부가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기존 기일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형사소송법에는 공판기일 변경신청을 기각한 명령은 송달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있다.

따라서 “신청서를 냈으니 일단 재판은 미뤄졌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기일이 변경됐는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기존 재판 날짜를 기준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를 적느냐가 중요해

공판기일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려면 단순히 “항소심을 오래 끌고 싶다”는 것보다는 왜 현재 날짜에 재판을 진행하기 곤란한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건기록 검토나 변론 준비에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건강상의 문제나 다른 재판 일정 등 구체적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피해자와 합의가 실제 진행 중이거나 피해회복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어 그 결과를 재판부에 제출할 필요가 있는 사건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런 사정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변경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결국 개별 사건의 진행상황과 변경 필요성을 재판부가 판단한다.

“양형자료를 더 준비해야 합니다”만으로 충분할까

가족들이 기일을 미루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양형자료다.

탄원서와 반성문을 추가로 준비하고 있거나 치료·교육·취업·가족부양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자료를 더 많이 제출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기일변경이 반드시 허가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재 어떤 자료를 준비하고 있고 왜 그 자료가 사건에 필요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지 등 구체적인 사정이 있다면 변호인과 상의해 설명하는 것이 좋다.

합의를 진행 중이라면 현재 진행상황을 정리해두는 게 좋아

피해자가 있는 사건에서는 항소심 중 합의를 추진하는 경우도 많다.

이때 가족들이 “합의할 시간이 필요하니 재판을 미뤄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합의를 하겠다는 계획만 있는 경우와 실제로 피해자 측과 의사가 오가고 있는 경우는 상황이 다르다.

실제로 합의가 진행 중이라면 변호인에게 현재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이 좋다.

재판부에 기일변경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면 막연한 계획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체적인 상황이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을 ‘길게 가져가는 것’ 자체가 항소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

이번 사연에서 눈에 띄는 표현은 “항소를 길게 가져가야 한다”는 부분이다.

가족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를 수 있다.

합의할 시간을 확보하려는 경우도 있고 양형자료를 준비하려는 경우도 있으며 가족이나 피고인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항소심은 단순히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는 아니다.

1심 판결의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 양형부당 등 항소이유를 심리하는 재판절차다.

따라서 기일변경이 필요한 이유도 항소심에서 실제로 어떤 준비가 더 필요한지와 연결해서 생각하는 것이 좋다.

구속 피고인 사건이라면 재판부가 사건 진행을 고려할 수도 있어

특히 피고인이 구속돼 있는 사건이라면 재판을 계속 늦추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구속 여부와 사건의 진행상황, 변론 준비 정도 등을 함께 고려하면서 재판을 진행한다.

따라서 가족이 원하는 기간만큼 항소심을 계속 미룰 수 있다고 전제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위험하다.

기일이 한 번 변경됐다고 해서 다음 기일도 같은 방식으로 계속 변경할 수 있다고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기일변경 신청을 했다면 기존 날짜를 그냥 넘겨서는 안 돼

이 부분은 특히 중요하다.

변호인이 기일변경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해서 기존 재판기일이 자동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재판부가 기일을 변경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변경되지 않았다면 원래 지정된 날짜가 그대로 유효하다.

따라서 기일변경 여부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기존 기일을 기준으로 재판을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항소심에서 피고인의 출석도 가볍게 생각하면 안 돼

형사 항소심에서는 피고인의 출석이 원칙적으로 요구된다.

대법원도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적법하게 공판기일 통지를 받고도 정당한 이유 없이 두 차례 연속 출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일정한 요건 아래 피고인의 진술 없이 판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연기 신청했으니 안 가도 되겠지”라고 임의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기일이 변경됐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면 기존 기일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

몸이 아파서 출석할 수 없는 경우도 자료가 필요할 수 있어

형사소송법은 공판기일 통지를 받은 사람이 질병이나 그 밖의 사유로 출석하지 못할 경우 의사의 진단서 등 자료를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재판기일을 변경하거나 출석하지 못하는 데에는 단순한 요청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유를 뒷받침할 자료가 중요할 수 있다.

결국 재판부가 납득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사정과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변호사가 확답을 못 해주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워

가족 입장에서는 불안하기 때문에 변호사에게 “연기되는 거 맞죠?”라는 확답을 듣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기일변경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은 변호사가 아니다.

재판부다.

따라서 신청 전 단계에서 변호사가 100% 연기된다고 확답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문제다.

변호인에게 확인해야 할 것은 ‘무조건 연기됩니까?’보다는 현재 어떤 사유로 기일변경을 신청할 예정인지, 그 사유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는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기존 기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다.

연기가 안 될 경우를 전제로 한 준비도 함께 해야

기일변경 신청을 준비하면서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가족과 피고인은 연기되는 경우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재판부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된 날짜에 그대로 재판을 진행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따라서 항소이유와 변론자료, 양형자료 등 현재까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예정된 기일을 기준으로 준비하는 편이 안전하다.

추가로 확보할 자료가 있다면 언제까지 준비할 수 있는지도 변호인과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연기신청 안 되신 분 있나요?”보다 중요한 질문

다른 사람의 경험담은 참고는 될 수 있다.

누군가는 합의 때문에 기일이 변경됐다고 하고, 누군가는 비슷한 이유로 신청했는데 그대로 재판이 열렸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건의 결과만으로 자신의 사건도 같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사건의 종류와 진행단계, 구속 여부, 기존 기일변경 여부, 신청 이유와 필요한 준비내용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연기됐나요?”라고 묻는 것보다 자신의 변호인에게 현재 사건에서 기일을 변경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가족이 확인하면 좋은 것은 네 가지

첫째, 변호인이 실제로 공판기일 변경신청을 제출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둘째, 신청했다면 어떤 사유를 제시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셋째, 재판부에서 실제로 기일을 변경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넷째, 변경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기존 날짜에 어떤 변론과 자료를 준비할 것인지까지 변호인과 이야기해 두는 것이 좋다.

신청할 수 있다는 것과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다른 문제

항소심 날짜가 예상보다 빨리 잡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공판기일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신청권이 있다는 것과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최종 결정은 재판부가 한다.

따라서 현재 기일을 변경해야 할 구체적인 사유가 있다면 변호인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이를 뒷받침할 자료가 있다면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

동시에 변경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까지 생각해 기존 기일에 맞춰 항소심 준비를 계속해야 한다.

가족 입장에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호사가 확답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를 좋지 않은 신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기일을 바꿀지 결정하는 것은 변호사가 아니라 재판부이기 때문이다.